미국 중심 일본·대만 잇따라 對中 반도체 제재
로이터 “중국 187조 투입해 자립 속도”
장기적으로 韓 기술유출과 수출급감 우려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미국의 봉쇄 조치가 속속 현실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손익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며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지만 중국과의 단절이 깊어질수록 기술 유출과 수출 급감이라는 역풍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 봉쇄 조치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16일 중국 국영 반도체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36개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수출통제에 나서기로 했다. 10월 미국이 인공지능(AI)·슈퍼컴퓨터 등 첨단 분야 관련 중국 28개 기업을 장비 수출 금지 대상에 올린 지 두 달 만이다.
미국 중심 ‘반도체 연합’이 중국 제재에 동참한다는 소식도 나왔다. 13일 블룸버그통신은 일본과 네덜란드가 첨단 공정인 14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금지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17일 대만 아이폰 생산업체 폭스콘이 중국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에 투자한 1조 원 규모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전방위적인 압박에 맞서 자체 공급망 구축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14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1조 위안(약 187조 원) 규모의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달 1일에는 랴오닝성 지방정부에서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보조금 지원안을 발표했다. 프로젝트 규모만 1억 위안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미중 갈등이 앞으로 우리 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은 중국으로부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뺏어 올 수 있어 기회가 되겠지만 10년 뒤에는 주변 정보가 모두 차단돼 깜깜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 대기업 임원은 “중국 기업들이 작정하고 온갖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해 끊임없이 기술을 확보하려 할 텐데 이 과정은 외부와의 소통 없이 은밀하게 이뤄질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깜깜이가 돼 훨씬 큰 리스크”라고 했다.
한국 반도체의 대중 수출 비중이 40%에 달한다는 사실도 여전히 우려된다. 중국과의 단절이 심화될수록 우리 기업이 설 자리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를 집중 규제하자 중국은 28나노 이상 성숙공정을 중심으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첨단 분야에서나 초정밀 공정이 필요하지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28나노 이상 반도체로 커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반도체 자립에 자신하는 분위기다. 지 싱푸(Ge Xingfu) 시랜드증권 수석 애널리스트는 15일 중국 경제매체 ‘21세기 경제보도’에서 “국산화가 가속화돼 성숙공정의 장비와 대량생산의 기회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그에 따른 공장 증설과 기업의 수익성 증대 등 실질적인 성과가 반영되고 있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 기업이 중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벌려 시장 우위를 점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은 “우리는 대부분의 기초기술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미국 동맹에 편승해 시장을 확대하고 주변국과의 협력으로 기술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미국이 첨단 낸드메모리 관련 장비 수출을 막는다면 중국 현지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지만 중국의 추격을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득실을 정확히 따져 전략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