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피해자들 “집주인 빚 얼마인지 몰라…알권리 강화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2일 2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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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속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빚이 있는 사람이 계속 무리해서 집을 사면 중간에 제지가 됐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전세사기 피해자 이모 씨)

2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수도권에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매입해 전세사기 행각을 벌이다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 씨 사건의 피해자 100여 명이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한법률구조공단이 개최한 피해자 대상 정부 대응방안 설명회에 참석한 이들이었다.

설명회 참석 대상은 김 씨에게 피해를 입은 세입자 중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440명이었다. 100여 명이 현장을 찾았고, 온라인 화상 회의로도 270여 명이 접속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전세사기는 세입자 개개인은 대처가 어렵다”며 “사기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를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여러 허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사과했다.

한 20대 피해자는 피해 상황을 설명하다 “인생 첫 부동산 계약이었다”며 “사건이 터지고 잘 알지도 못하는 법률용어까지 찾아봤는데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힘들게 지냈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김 씨 피해자 중 70% 가량은 부동산 계약 경험이 많지 않은 20, 30대 사회 초년생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세입자 수백명이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를 당하는 동안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 배소현 씨(27)는 2020년 말 김 씨와 경기 수원시 장안구 빌라의 전세 계약을 맺었다 6개월 뒤에야 보증금 2억3000만 원이 분양가격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김 씨가 세금 수십억 원을 체납하고 있다는 것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 배 씨는 “신축 빌라여서 전세가율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임대인인 김 씨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도 전혀 몰랐다”며 “임차인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시세 대비 전세가격도 저렴한 편이었고, 계약을 맺으면서 모든 것을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도중에 임대인이 김 씨로 바뀐 사실을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돼서야 알았다”고 호소했다.

김 씨에게 피해를 당한 세입자 중 HUG 보증보험 가입자는 614명으로, 나머지 500여 명은 미가입자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서에 ‘집주인에 임대사업자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는 특약을 넣는 등 집주인이 보험을 가입했다고 생각해 세입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이날 △임차권 등기 전 대위변제 심사로 보증금 반환 절차 단축 △보증보험 미가입자에게 최대 1억6000만 원 연 1%대 저금리 대출 지원 △전세보증금 대출 만기 최대 8개월 연장 △HUG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리 주택에 임시거처 마련 등의 대책을 내놨다.

업계 전문가들은 악성임대인 명단 공개, 집주인 세금체납 정보 공개 등 알 권리를 강화하는 조치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계약을 중개할 때 임대인이 거래액의 일정 비율만큼 ‘사고 보험’에 가입하게 한다면, 전세 사고가 날 때 보험금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HUG의 보증보험 역시 계약서 작성 이후 가입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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