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정부, 2023년 경제정책방향 통해 수요 늘리고 양도세 중과 대대적 손질
매해 말이면 정부는 이듬해 시행될 경제 관련 규제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공개한다. 이른바 ‘경제정책방향’이다. 올해는 정권교체라는 큰 변수가 생긴 탓에 경제정책방향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돼 관심을 모았다. 정부가 12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방향’은 예상대로 이전 정부와 크게 달랐다. 정부·공공 주도에서 민간·시장 중심으로 전환됐고, 지난 정부에서 묶고 조였던 여러 분야의 규제가 대대적으로 폐지되거나 완화됐다.
여기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야기된 복합 경제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시장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을 1.6%로 낮춰 잡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3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취업자는 올해보다 9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도 집값 30%까지 주담대 허용
부동산 관련 정책도 이런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중심에 있다. 그만큼 부동산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상위 10% 이내에 들어가는 건설회사가 부도를 내고, 올해 하반기(12월 20일 기준)에 폐업한 건설회사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른다. 내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설업의 위기는 연관 산업은 물론, 금융시장 등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도 이런 위기의식 탓에 부동산 정책의 큰 방향을 아예 ‘시장 연착륙’으로 못 박았을 정도다.
이에 따라 내년 부동산 정책은 수요층을 두텁게 하고, 공급 물량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즉 수급 조절을 통해 경착륙을 막겠다는 것이다. 특히 수요를 늘리기 위해 규제 일변도로 치달았던 지난 정부와는 상반된 정책들을 쏟아냈다.
수요 확대 대책에선 다주택자와 실수요자에 대한 이중 삼중 규제 완화가 핵심이다. 정부는 우선 서울과 경기 과천·성남·하남·광명 등 규제지역(투기과열·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지역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취득세 및 양도세 중과세 조치를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현재 다주택자는 집을 사고팔 때 상당한 세금 부담을 안는다. 취득세 일반세율은 1~3% 수준이지만, 2주택(규제지역·비규제지역은 3주택) 이상 보유한 경우에는 세율이 8~12%로 높아진다. 정부는 이를 절반 수준인 4~6%로 낮추고, 중과세율도 3주택자(4%)부터 매기기로 했다. 내년 5월까지 유예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양도세) 중과 배제는 2024년 5월까지 1년 더 연장한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는 급하게 집을 처분하지 않아도 돼 그간 시장에서 물량 부담으로 작용했던 다주택자 절세 매물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다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집을 살 때 지금은 주택담보대출이 아예 금지돼 있지만, 앞으로는 집값의 30%(주택담보대출비율·LTV)까지 허용한다.
수요 확대 방안의 또 다른 핵심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육성과 폐지를 오간 주택임대사업자 제도의 부활이다.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는 임대인에게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하고 의무 임대 기간을 유지하도록 해 세입자를 보호하는 제도로,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는 이를 계승했지만 집값 폭등 원인으로 지목되자 2020년 7월 폐지했다. 정부는 이번에 이를 되살리면서 전용면적 84㎡ 아파트까지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게 허용할 방침이다. 또 이전에 폐지된 임대사업자 임대소득세 감면이나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와 세제 혜택도 복원하고,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일반 다주택자(집값 30%)보다 높일 예정이다. 의무 임대 기간을 10년에서 15년으로 늘린 사업자는 혜택을 더 주기로 했다.
규제지역 무주택자 대출한도 상향
실수요 확대 대책은 전매제한과 대출한도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규제지역 무주택자 대출한도가 기존 집값의 50%에서 더 높여진다. 또 분양가상한제 단지에 적용되던 5년 실거주, 10년 전매제한도 조정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내년 1월 초 국토교통부가 별도로 발표한다. 공시가는 최근 집값 하락 추세 등을 반영해 낮아지고,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세금 산정을 위해 공시가를 적용하는 비율)도 45%에서 더 하향된다. 분양·입주권 단기 양도세율은 2020년 수준으로 환원된다. 현재 분양권을 1년 안에 팔면 적용되는 양도세율 70%도 45%로 낮아진다. 1년 이상 보유한 후 팔 땐 중과세율(60%) 대신 기본세율(6~45%)만 적용된다. 여기에 현재 서울 등 5곳에 묶여 있는 규제지역도 내년 초 해제된다. 현재 5곳은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이중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다.
공급 대책은 공급 시기를 늦추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과다한 주택 공급에 따른 시장 충격을 막기 위해 8월 발표한 270만 채 공급 계획의 속도를 조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택지 내 민간주택에 대한 사전청약 의무 시기가 6개월 이내에서 2년으로 연장된다. 또 필요시 공공부문 주택 분양 일정도 추가 조정된다. 다만 현재 사업이 추진 중인 3기 신도시는 내년 상반기 중 토지보상이 완료되고,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경착륙 방지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도 “고금리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반응을 내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침체된 시장의 단기 방향 전환과 빠른 회복을 이끌어내는 데는 제한적이겠지만, 일부 급매물 소화와 시장 연착륙에는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정책 효과 실현까지 시간이 걸리고 고금리 및 집값 추가 하락 우려 영향으로 즉각적인 거래 유도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내년 상반기 이후 서울 등 장기 투자 가능 지역을 중심으로 급매물 저점 매수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고금리·고물가 현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변수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내년 부동산시장의 연착륙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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