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낸 보험-주택청약 깨 생활비 보태… “당장 먹고살기 빠듯”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8일 03시 00분


[돈줄 얼어붙은 서민들]
“금리 올라 대출이자 감당 힘겹다, 손해보더라도 보험 깰 수밖에”
1~9월 해지환급금 급증해 24조… 보험-청약통장 담보 대출 받기도

경기 수원시에서 식당을 하는 이모 씨(54)는 20년 넘게 납입하던 종신보험을 지난달 해지했다. 식당을 찾는 손님이 줄어든 데다 연 6%를 넘어선 대출 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씨는 “당장 먹고살기 빠듯한데 매달 8만 원씩 내는 보험료는 부담”이라며 “그동안 낸 보험료의 70%밖에 돌려받지 못했지만 생계를 위해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보험을 해약하고 돌려받은 2000만 원가량으로 대출을 갚고 생활비를 보탰다.

고물가, 고금리 기조 속에 경기 침체마저 가속화되면서 미래를 위한 안전판인 보험이나 주택 청약을 깨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해 은행을 찾는 대신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받는 사람도 많아졌다.
○ 고금리·고물가 시달리는 서민들, 보험마저 깨

27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생명보험사 23곳이 고객에게 지급한 해지 환급금은 24조3309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9조7332억 원)보다 23.3% 늘었다. 올 들어 매달 2조7000억 원씩 보험 해지로 인한 환급금이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연간 보험 해지 환급금은 32조 원을 넘어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2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해지 환급금이 30조 원을 넘어서는 것도 처음이다.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면 납입한 원금보다 적은 금액을 돌려받고, 나중에 보험에 다시 가입하려고 해도 보험료가 더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 고물가 여파로 가계 경제가 악화되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깨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및 신용대출 금리가 연 8% 돌파를 앞둔 가운데 이자율이 연 2.1%에 불과한 청약 통장을 깨서 대출을 갚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1만 명이 주택청약종합저축을 해지했다. 2009년 출시 이후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최근 청약 통장을 해지해 신용대출을 갚은 직장인 김모 씨(31)는 “대출 금리는 계속 뛰고 있고 부동산 시장도 침체돼 당분간 청약 계획이 없다”며 “청약 통장을 깨서 빚부터 갚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불황기 서민 대출’ 급증
보험이나 청약 통장을 해지하는 대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사람도 늘고 있다. 보험금을 담보로 하는 약관대출과 청약 통장을 담보로 받는 청약담보대출은 별도의 심사 없이 1시간 내에 빌릴 수 있고 일반 신용대출보다 금리도 낮아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불황기 서민 대출’로 불린다.


9월 말 현재 생보사들의 보험약관대출 잔액은 47조7626억 원으로 올 들어 2212억 원 늘었다. 약관대출은 올해 1∼3월 감소하다가 금리와 물가 급등세가 본격화된 4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매달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올 들어 신한, 하나, 우리 등 주요 시중은행의 청약담보대출도 매달 평균 370억 원씩 늘고 있다. 특히 12월 들어 1465억 원 급증해 올해 최대 증가 폭을 보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보험, 청약 해지가 늘어나는 건 가계 경제가 나빠지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불황 징후”라며 “내년 경기 침체, 고용 한파 등으로 가계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어 정책금융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험#주택청약#생활비#대출이자#고금리#고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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