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반도체 재고가 최근 1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쌓이면서 주요 반도체 기업들 대부분이 감산·감원 등 비상 경영에 나섰다. 유일하게 정상 생산을 선언한 삼성전자는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메모리 반도체 사업 적자 전환 등 실적 부진이 우려된다.
30일 스위스 연방은행(UBS)에 따르면 반도체 재고 수준은 통상 수일 단위지만 최근에는 업계와 공급망의 중앙값보다 40일치를 넘어 10년 만에 최고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초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정에서의 전자기기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공급난이 발생했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제품 수요가 줄어들면서 핵심 부품인 반도체 수요도 급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3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8.5% 늘어났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재고자산도 64.4% 급증한 14조6649억원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0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전월보다 32.3% 급감했다”며 “반도체 사이클이 바닥권인 건 맞지만, 재고가 너무 많아 바닥을 치고 올라갈 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경기가 장기간 바닥에 머물 조짐을 보이면서 관련 기업들의 비상 경영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내년에 전체 직원(약 4만8000명)의 10%를 감원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여기에 올해보다 20% 이상 감산, 설비투자 30% 이상 축소 등 고강도 조치도 진행한다.
인텔 역시 감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 3년 동안 최대 100억달러(약 12조7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퀄컴과 엔비디아도 채용 동결을 결정하고 각종 사업비 삭감에 나섰다. 지난 10월 SK하이닉스도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보다 50%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주요 기업들이 모두 감산을 선언했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 유일하게 생산과 투자 활동을 정상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감산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부동의 1위 삼성전자가 우수한 원가경쟁력을 발판삼아 다가올 호황 시기에 점유율을 한층 더 늘리기 위한 일종의 ‘원사이드 게임’이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다만 업계에선 당장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거나 업황이 반전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만큼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올투자증권은 새해 2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을 8860억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 동기 실적(9조9810억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는 파운드리 실적이 더해진 수치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만 한정하면 19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급격히 늘어난 재고로 새해 1분기 메모리 가격의 낙폭은 예상보다 확대될 것”이라며 “감산 결정이 없다면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은 내년 2분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반도체 업황이 반등할 경우 삼성전자는 누구보다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감산한 만큼 시장점유율 확대도 예상된다. 마이크론은 대부분의 고객사가 새해 중반까지 재고를 적당한 수준으로 줄이고, 내년 10월부터는 재고 과잉 상태가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는 이번 다운턴에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며 “현재의 재고 조정 수준은 비정상적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이 2023년 말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