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시되어온 ‘정년연장’, 논의 본격화하나…생산인구 절벽에 수면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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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월 2일 0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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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2.2.24/뉴스1 ⓒ News1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2.2.24/뉴스1 ⓒ News1
정부가 ‘만 60세’ 정년을 연장하는 논의를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년연장 논의는 젊은층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우려에 사실상 금기시돼 왔지만 생산인구 감소 및 고령화가 현실화되면서 본격 수면 위로 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14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열린 ‘인구위기대응 전담반(TF) 3차 회의’에서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구조개혁 과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 차관은 이 자리에서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를 본격 추진하겠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인구위기대응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종합대책을 확정·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나경원 부위원장 주재로 제2차 인구미래전략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인구구조 변화와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60세 이상 계속고용 법제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65세 이상 신규 취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적용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60세 이상 고령자 고용시 중소기업의 공제액을 상향(수도권 1100만→1450만원, 지방 1200만→1550만원)하는 등 고령층 채용 맞춤형 지원을 확대한다. 고령층의 고용 현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경제활동인구조사 연령구간도 현행 ‘70세 이상’에서 ‘70~74세’, ‘75세 이상’으로 세분화한다.

정부가 고령자 계속고용 제도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는 생산연령인구(만 15~64세) 감소와 고령화가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3738만명 수준이던 생산인구는 10년 후인 2030년엔 3381만명으로 연평균 36만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40년(2852만명) △2050년(2419만명) △2060년(2066만명) △2070년(1730만명) 등으로 생산인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하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0년이면 전체의 25.5%가 된다. 국민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라는 의미다.

통계청이 분석한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40년(34.4%) △2050년(40.1%) △2060년(43.8%) △2070년(46.4%) 등으로 2070년에는 세계에서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된다. 2070년 기준 고령인구가 생산인구를 앞지르는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고령자의 계속고용 및 재취업 논의를 넘어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정년연장으로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부에 논의를 권고한 바 있다. 정년연장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과제인 연금·노동 개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점도 이유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일 신년사를 통해 “가족의 어른이며 사회의 큰 재산인 고령자의 경륜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년연장, 계속고용, 재취업 등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겠다”며 정년연장 논의를 예고했다.

다만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 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빠른 속도의 생산인구 감소 및 고령화로 정년연장 논의 자체의 필요성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년연장의 경제사회적 효과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차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인구미래전략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2.12.28/뉴스1 ⓒ News1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차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인구미래전략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2.12.28/뉴스1 ⓒ News1

핵심 쟁점은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점이다. 고령자의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는 상호대체재가 아니라는 입장과 이미 임금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고령층의 정년을 늘리면 청년 일자리에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특히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은 채 시행되면 자칫 세대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2019년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년연장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청년층의 반발로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넘지 못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년연장 자체보다 한국사회 사정에 맞는 임금·노동 구조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은 “현재 한국의 주된 퇴직 연령은 50~55세 내외로 법적 정년인 60세보다 낮다”며 “정년연장보다 임금 제도와 기업의 인사 제도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한국의 연공제는 사실 편한 제도”라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평가를 해야 되는데 그런 평가 없이 오래 일하면 높은 임금을 주다보니 재직 기간이 제한적일 땐 효과적이지만 지금 같은 고령화 때는 많은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공제에서 벗어나 경영자와 근로자가 어떤 식의 평가를 통해 임금을 정할 지 등의 임금·인사 개편 논의가 정년연장 논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년연장이 미칠 계층별 파장을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며 “젊은층에게 좋은 일자리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과 동시에 제도적인 정년연장의 혜택이 고임금 노동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중저임금 불안정층에게도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같은 지적을 감안해 정책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KBS 인터뷰에서 “우리 임금구조가 소위 말해서 연한이 높으면 자연스럽게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로 돼 있다”며 “당장 정년 고용을 쉽게 결정하기보단 청년 취업 문제, 임금체계 개선 문제 등 사회적 논의를 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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