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 5% 내외의 고물가가 이어지고 한·미 금리 격차도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기침체, 부동산 경기 하락, 연체율 상승, 채권 시장 유동성 경색 등 금융 불안정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번 달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한은의 고민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오는 13일 열리는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한은이 경기 위축 우려로 기준금리를 3.25%에서 동결할 것이란 전망과 미 통화당국의 긴축을 감안해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상당수는 이번 달 기준금리를 동결 하더라도 한은의 최종 기준금리는 3.5% 이상에서 마무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신년사에서 “국내에서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며 “금리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물가·경기·금융 안정 간 상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므로, 더욱 정교한 정책 조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물가가 목표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므로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기조를 지속해야 한다”며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에 대해서도 “높은 금리 수준 등이 향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그간 미뤄왔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고금리 환경 역시 높은 가계부채의 수준을 낮추고 부채구조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물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가 경기나 부동산 시장, 금융안정 상황 등에 따라 일부 수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기존의 한은에는 없던 파격 소통 행보와 명쾌한 메시지의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 제시)’를 제시해 왔던 이 총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그만큼 올해 첫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한은의 고민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는 3.25%다.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통위에서 금통위원 대다수가 내년 최종 기준금리를 3.5%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금통위원 6명 중 3명이 최종금리가 3.5%가 적절하다고 봤고, 2명이 3.75%, 1명이 3.25%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외 경기 지표 부진 등으로 기준금리 동결 쪽으로 의견이 옮겨갔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다양해 지고 있는 만큼 금통위 의장인 이 총재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침체되고 있는 경기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인 미국이 올해 1%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중국도 4%를 하회 하는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해제하고 ‘위드코로나’로 본격 전환해 수요가 늘어날 경우 물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와 물가 사이에서 정책 결정을 내리기 더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미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자본 유출입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한은의 금리 인상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25~4.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이로 인해 한국과의 금리(3.25%) 격차가 1.25%포인트로 확대되는 등 2000년 10월 5일(1.25%포인트) 이후 22년 2개월래 최대폭을 기록했다. 미 연준은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5.1%로 높이겠다고 밝혀 한국과의 금리 격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언급한 경기 침체 발언만 고려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앞으로 한 차례 더 올려 3.5%에서 멈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올해 고물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미 연준도 최종금리를 5.0% 이상으로 올릴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기준금리를 3.5% 이상까지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미 연준이 2월 FOMC에서 0.25%포인트 인상으로 긴축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이번 달 초 발표될 예정인 지난달 말 고용지표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다. 구인난과 낮은 실업률, 예상치를 상회하는 신규 고용자 수 등으로 임금 상승세가 가팔라질 경우 추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황이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경기 지표가 부진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금통위 내 동결 의견이 이전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동결 의견이 과반이 되면 1월 기준금리는 인상이 아닌 동결로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 경우에도 인상 결정 시점상의 변화일 뿐 한국의 최종 기준금리 수준은 여전히 3.5%로 보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 하강, 연체율 상승, 각종 유동성 경색 이슈와 소비심리 위축 등의 여건을 감안하면 한 차례 정도의 추가 인상이면 이번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은 마무리 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씨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은 이번 달 열리는 올해 첫 금통위에서 경제 성장과 부동상 시장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준금리를 현재의 3.25%에서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인사인 서영경, 박기영 위원 두 명이 물가 안정을 위해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내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가 국내 경기 둔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지만, 미 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하는 듯 보인다”묘 “이번 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3.25%에서 3.5%로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경기 둔화 압력, 인플레 기대심리 하락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가 3.5%에 도달한 후 긴축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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