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제조업]
수주 늘어 외국인 인력 수요 급증
정부 작년 인력쿼터제 완화했지만, 국내 입국 절차에만 수개월 걸려
“용접공 600명 필요, 20명만 채용”
국내 한 조선업체 외국인 채용 담당자 A 씨는 더디기만 한 인력 충원 속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 등 정부가 조선업 관련 특정활동(E7) 비자 쿼터를 없앴지만 막상 이 회사에 들어온 외국인 용접공은 20여 명뿐. 회사 측이 지난해 목표로 정한 채용 인원 600명의 3% 수준이다.
조선소 현장에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면서 A 씨 회사의 선표(선박 건조 일정)는 이미 한 달 이상 밀렸다. 물리적으로 최종 납기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선주에게 지불해야 하는 납기 지연금은 상선을 기준으로 하루 수천만 원에 이른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수주 호황기로 돌입한 2021년 하반기(7∼12월) 확보 물량(선박)이 올해부터 실제 건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A 씨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현장의 아우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외국인 인력을) 제발 좀 빨리 들여보내 달라고 해도 관련 당국은 석 달째 ‘진행 중’이란 답변만 한다”고 했다.
4일 조선업계 및 관련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선소를 통틀어 새로 채용된 외국인 용접공은 90여 명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산업부 의뢰를 받아 7월 말부터 총 17차례에 걸쳐 해외 현지에서 기능인력 기량 검증을 시행했다. 여기서 통과한 3500여 명 중 실제 입국자는 3% 수준에 그친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89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200척)에 불과하던 한국의 선박 건조 계약 수주량은 2021년 1768만 CGT(411척)로 98% 이상 늘었다. 지난해도 1∼11월 1575만 CGT를 수주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수주 잔량은 3742만 CGT로 1년 전(2981만 CGT) 대비 761만 CGT(25.5%) 늘었다. 수주량이 4년 연속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에 머물렀음에도 수주 잔량은 인력 수준으로 봤을 땐 이미 생산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이 국내 주력 상품으로 올라서면서 단순 노무(비전문취업·E9)가 아닌 용접공 등 외국인 기능인력에 대한 업체들의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해 5월 올해 1, 2분기에 각각 3341명, 4458명의 조선 용접공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A 씨는 “해외 인력 확보에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다른 업체라고 다르지 않다”며 “수주 잔량이 3년 치를 훌쩍 넘긴 호황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늘”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채용 행정절차만 5개월… 작년 입국 造船용접공 90여명뿐
해외인력 급한데 “심사중” 올 1분기 용접공 3341명 부족… “수주 선박 최종 납기 못 맞출 판” 인력 쿼터 완화했지만 현장선 혼선… “검증인력 늘려 행정처리 속도내야”
정부는 조선업이 인력 부족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난해 4월부터 외국인 인력 쿼터제를 대폭 완화했다. 지난해 4월 조선업 관련 특정활동(E7) 비자의 인원 제한(용접공 600명, 도장공 300명 등)을 없애면서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정작 협회의 현지 기량검증이 실시된 건 3개월이 지난 7월 말이었다. 소수 외국인 용접공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또다시 3개월이 지난 10월부터였다. 행정 절차에 걸리는 시간 때문이다.
E7 비자를 받아야 하는 외국인 기능인력 채용은 협회가 기량검증을 한 뒤 각 조선업체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한국에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다. 협회가 다시 근무경력 등에 관한 서류를 검토한 뒤 산업부에 ‘예비고용 추천’을 하고, 산업부는 최종 검토 후 법무부에 ‘고용 추천’을 한다. 법무부가 사증(VISA)을 발급하면 그제야 입국이 가능해진다.
현장 취재를 종합하면 현지 기량검증 실시 후 산업부 고용 추천까지 2개월여, 법무부 사증 발급이 나오는 데 1, 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담당 인력 부족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앞 단계에서 개별 업체가 협회에 기량검증 신청을 하고 현지 기량검증이 이뤄지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한국행’을 결정한 외국인 인력이 실제 들어오기까지는 5개월 이상이 걸린다. 당장 올해 상반기(1∼6월)에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4000명 이상 용접공을 채우는 게 어려워 보이는 배경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비전문취업(E9)과 국내 용접공 등 특정활동(E7) 비자로 국내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는 인력은 각각 2159명과 863명이다. 올해 2분기(4∼6월)면 모든 직능을 통틀어 부족한 생산 인력(1만1087명)은 1만 명을 넘기고, 3분기(7∼9월)에는 1만3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 기대와 현실에서 속도가 크게 차이 난 데는 정부 지침 혼선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외국인 고용에 대한 지침을 개정할 때 인력 송출 국가의 업체를 한국 주재 각국 대사관이 인증하라는 조건을 달았다가 9월 다른 인증 절차를 추가하는 것으로 바꿨다. 현지 인력업체 선정 기준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에야 회사 기준을 기존 ‘3년 이상 운영’에서 ‘1년 이상 운영’으로 완화했다.
국가별로 송출국 정부의 인증을 받는 절차를 한국 정부 도움 없이 민간(송출업체 등)이 직접 처리하다 보니 시간 지체가 생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 추천 권한을 가진 산업부 또한 해당 업무를 소수 인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고용 추천과 현지 기량검증을 효율화하기 위해 주관 기관을 지난해 4월 KOTRA에서 산업부 및 협회로 바꿨는데 초기 시행착오 때문에 오히려 더 지연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베트남 등에서 미인가 인력 송출업체가 적발된 사례 등을 들어 인력을 늘려 검증을 강화하되 처리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올해 각 조선업체들은 작년보다 늘어난 1000명 이상씩 외국인 용접공 채용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증 발급을 담당하는 각 지자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한두 명에 그치고 있다”며 “수요가 늘면 이들에게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도 커 상반기 내 수천 명 인력 채용이 가능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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