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좋을때 떠나자”… 은행권 희망퇴직 3000여명 쏟아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9일 17시 01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2016.12.12 뉴스1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2016.12.12 뉴스1
한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김모 씨(54)는 올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으로 가족들과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다. 2024년 7월부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에 퇴직을 1년 앞당겼다. 김 씨는 “이 나이가 되면 제2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알아보는 게 쉽지 않았다”며 “1년 동안 돈을 더 벌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은행들이 높은 수준의 희망퇴직금을 제시하면서 연말연초 은행권에서 3000여 명이 그만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인력 감축 등 비용 효율화에 나선 은행과 목돈을 쥐고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직원들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 올해 시중은행 희망퇴직자 3000여 명 예상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700명 이상이 의사를 밝혔다. 최종 인원은 조만간 확정되는데, 신청자가 모두 퇴직한다고 가정하면 지난해 1월(674명)보다 퇴직자가 30명 정도 늘어나게 된다. 1967~1972년생(51~56세) 대상, 23~35개월치 월급 등 대상과 조건이 지난해와 비슷했지만 퇴직 희망자가 늘어났다.

작년 말 희망퇴직 절차를 마무리한 NH농협은행에서도 2021년 말(427명)보다 60명 이상 많은 493명이 짐을 쌌다. 전년보다 희망퇴직 조건을 상향해 더 많은 신청자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희망퇴직 절차를 진행 중인 신한·하나·우리은행 등 다른 은행들에서도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희망퇴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1년 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서 직원 2244명이 희망퇴직했는데, 이번에는 신청자가 더 많아 규모가 30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은행은 ‘인력 감축’, 직원은 ‘인생 2막’
은행 입장에서는 디지털 전환과 오프라인 점포 축소 등을 위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축소가 불가피하다. 특히 최근 많은 이익을 내자 이를 바탕으로 특별 퇴직금 등 희망퇴직 조건을 높이며 적극적인 비용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4억~5억 원(부지점장급)에 달하는 특별 퇴직금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는 직원들의 희망퇴직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2021년 희망퇴직 대상과 기회를 확대해달라는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처음으로 1년에 2번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 전문은행이나 핀테크 업체가 늘어나는 등 금융권의 환경이 변하면서 퇴직 후에도 전문성을 살리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인사 적체로 인한 승진 누락, 향후 경기 불황에 따른 희망퇴직 조건 축소 가능성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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