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월세에 집주인 면접까지…“전세시장 갑을 완전 바뀌어”

  • 뉴시스
  • 입력 2023년 1월 10일 0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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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너무 올라 2년 만기를 앞두고 퇴거를 통보했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해 몇 차례 말다툼이 오갔네요. 결국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날 때까지 집주인이 대출이자 절반을 내주기로 해 좀 더 살기로 했습니다.”(서울 중구 거주 30대 신혼부부 A씨)

최근 역전세난이 가속화되면서 역월세를 주거나 보증금 일부를 반환한 뒤에야 임차인과 갱신계약을 체결하는 임대인들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차인이 집주인을 고르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집주인 면접’이라는 웃지 못할 말까지 등장했다.

10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전세 매물은 5만4412건으로 한 달 전(5만15건) 대비 8.7% 증가했다. 특히 서울 중구는 938건으로 한 달 전(535건) 대비 75.3%나 상승, 전국 시군구 중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지난해 4월만 해도 서울 중구 전세 매물이 최소 188건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약 5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이외에도 서울 동작구(1603건→2065건, 28.8%), 서울 종로구(293건→376건, 28,3%), 강남구(7042건→8764건, 24.4%) 등 서울 지역은 한 달 간 전반적으로 전세 매물이 증가했다.

이러한 전세 매물 급증은 금리인상에 따른 전세대출 부담 및 전셋값 하락 등으로 전세수요가 급감하면서 전국적으로 역전세난이 벌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큰 이슈가 되자 임차인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임차인들이 자신의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집주인의 직업이나 재산 상황 등을 공인중개소에 물어보며 집주인 고르기에 더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 B씨는 “처음 전셋집을 구할 때부터 집주인이 보증금을 바로 돌려줄 여력이 있는 지를 제일 중요하게 봤다”며 “임대사업자라서 전셋값을 자주 올리지 않고 주변에 건물이 많다고 해 들어왔는데 최근 전세사기 뉴스를 보고 다시 보니 우리 집도 보증보험이 일부만 가입돼 있는 등 불안한 점이 많아 갱신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제는 집주인도 면접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이제 집주인들에게 재산세 납부 영수증, 범죄이력조회증명서 등을 요구해야겠다”는 등 웃지 못할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수도권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요즘엔 역전세 때문에 만기도래 때 세입자가 주인에게 2억원 정도는 돌려달라고 딜을 한다. 갑과 을이 완전 바뀌었다”며 “이제는 임차인들이 다들 갱신계약을 안 하려고 하다 보니 2억원을 돌려주더라도 더 살아주는 게 고마운 상황이다. 집주인들이 부동산에 전화가 오면 저희도 그냥 주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집주인들은 완전히 뒤집힌 분위기에 임대차법이 세입자 위주로만 만들어진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한 오피스텔 임대인은 “요즘은 임차인들이 갑이다. 이제는 세입자들이 나가면서도 정확히 입금을 하라며 큰 소리를 친다”며 “임대차법은 임대인에게 5% 이상 보증금을 올릴 수 없게 하면서 임차인들은 50%를 깎아달라 해도 문제가 없다. 또 2년 계약이 끝나면 갱신 후에도 언제든 임차인 마음대로 퇴거할 수 있다”고 한탄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영끌빚투는 내 집에 내가 살고 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면 버틸 수 있지만 갭투자자는 역전세난으로 만기된 세입자 보증금을 되돌려주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다면 더 불리하다. 재계약 당시 2년을 계약했어도 세입자는 2년을 살지 않고 언제든 중도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집값 급락 사태로 우리가 깨우칠 수 있는 교훈은 2가지다. 갭투자가 얼마나 위험한 투기적 우상향 기우제인지와 여유자금의 소중함”이라며 “하락한 보증금만큼 역월세라도 지급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세입자에게 제때 채무상환을 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자가 돼 큰 손실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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