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를 맞았지만 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경기가 조정 국면을 겪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여러 침체 시나리오에 대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15년 전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 뼈를 깎는 자구책과 미래 지향적인 투자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대규모 인력 감축, 공장 간 재배치, 생산 비용 감축, 아웃소싱 등의 전략을 담은 ‘파워 8’을 실행에 옮겼고 네 건의 인수합병(M&A)과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3, 4년 후 돌아온 경기 회복기에 시장 1위 지위를 회복했다.
이처럼 기업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에릭 톰프슨 베인앤드컴퍼니 APT(Accelerated Performance Transformation) 부문 아태지역 총괄 대표는 이렇듯 침체와 반등의 기로에서 기업들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도록 구원 투수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다. 지난해 말 서울을 방문한 톰프슨 대표를 만나 경기 침체기에 기업 체질을 어떻게 바꿔야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을지 물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1월 2호(361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 피할 수 없으면 선제적 대응을
―현재 경기 침체를 어느 수준으로 예상하나.
“예상보다 경기 침체의 강도가 심각할 수 있고 전 세계가 영향권에 놓일 것이며 기간도 3∼4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모든 기업이 단기간에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시나리오별 대응을 고려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매출이 각각 10%, 20%, 50% 하락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경우의 수에 맞춰 생각해야 한다. 막상 경기 침체가 닥치면 기업들은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만 하기에도 벅차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변화에 수동적으로 움직여서는 승산이 없다.”
―과거 직접 수행한 프로젝트 중 선제적 대응이 잘 이뤄진 사례가 있다면….
“2014년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고객사였던 한 광산 업체는 다년간 이어진 활황기 때부터 원자재 가격이 50%가량 급락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지 미리 고민했다. 가격이 50% 깎인다고 비용도 곧바로 50%만큼 줄어드는 건 아니다. 따라서 이 기업은 호황기, 구성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올랐던 구매, 공급망 관련 비용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아울러 그동안 매출을 확대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던 제품 출하 단계에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제품을 항구로 옮길 수 있을지 분석했다.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고 신속하게 출하함으로써 매출을 늘릴 방안을 강구한 것이다. 이 같은 선제적 대응은 기업이 가격 하락을 방어하고 호황기였다면 계속 부담했을 비용을 줄이는 계기가 됐다.”
―비용 상승기에 매출을 확대하려면 가격을 인상해야 하나.
“경기 침체기 매출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하면 대다수 업체가 가격 인상만을 떠올린다. 특히 많은 소비재 기업이 비용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거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인다. 하지만 이 방식을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는 없다. 같은 커피를 주문했는데 예전보다 용량이 적다면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느 선까지는 수용하겠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저가 제품으로 갈아타거나 차라리 집에서 마시고 말 것이다. 그리고 품질에 큰 차이가 없는 커피를 반값에 제공하는 대체재를 찾게 된다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효율성 제고를 동반하지 않는 가격 인상은 위험하다.”
○ 가격 인상 외 현명한 대안 찾아야
―그렇다면 비용 상승기 가격 인상 외에 효과적인 대응 전략에는 무엇이 있나.
“소비자들이 영원히 이탈해버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패키징 변경, SKU(최소 재고 관리 단위) 조정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등 대안에 눈을 돌려야 한다. SKU 조정을 예로 들면, 자동차 기업의 경우 모든 사양을 다 갖춘 모델보다는 축소된 사양을 넣은 모델을 론칭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고객사인 한 해산물 공급 업체의 사례를 보면 초반에는 비용 상승 압박에 못 이겨 가격을 인상했지만 이후에는 추가 인상보다는 자사 브랜드(PB) 비중 확대 및 공급망 재편을 통해 원료 비용을 적극적으로 절감했다. 가격 인상만 고집할 경우 브랜드 사업 매출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PB 품목을 늘려 마진을 극대화하는 대안을 택한 것이다.”
―가격을 유지하더라도 수요 위축은 불가피할 것 같은데 고객 이탈을 막으려면….
“이럴 때일수록 고객을 중심에 두고 고객이 브랜드의 일부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코스트코는 매일 고객에게 e메일 메시지를 보낸다. 최근에는 메시지 내용을 조정해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라는 데 공감을 표하고 코스트코가 고통 분담을 위해 좀 더 큰 폭으로 할인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주유소 사업도 운영하는데 미국 소비자들이 기름값에 민감하고 이 가격이 유통업체의 전반적인 가격 수준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착안해 기름값이 저렴하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하는 미끼 상품으로 휘발유를 활용한 셈이다. 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할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명한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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