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계를 뒤흔들었던 9조 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140억 원 안팎의 수수료 수입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역업체로 위장한 가상자산 투기세력이 거액의 외화를 반복 송금할 때 은행들은 거래의 불법성을 의심하지 않고 이들을 우량 고객으로 대우하며 수익을 챙겨온 것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상 외화송금 당시 국내 은행들이 받아 온 평균 수수료율은 0.16%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전국 12개 은행에서 총 72억2000만 달러(약 8조9000억 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이 이뤄졌다. 이를 감안하면 은행들은 환전 및 송금 수수료 등으로 총 140억 원대의 수입을 올린 셈이다.
이상 외화송금은 가상자산 투기세력이 동일한 가상자산이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활용해 차익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투기세력은 거액의 외화를 무역대금 명목으로 해외 업체 계좌에 송금했고, 이 돈으로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 전송, 매각해 차익을 거두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런 거액의 외화 송금을 단순한 무역 거래에 따른 거래로 간주하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이는 은행들이 가상자산 투기세력을 우량 고객으로 대우하면서 불법적인 외화 송금에 사실상 일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래가 잦은 우량 기업 고객이 90% 이상의 우대 환율을 적용받았을 때 0.1∼0.2% 수준의 수수료율이 책정된다”며 “이상 외화송금 때 적용한 수수료율(평균 0.16%)은 우량 고객을 위한 수수료율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가상자산 투기세력은 신설 무역회사를 이용하면서 송금 우대 혜택을 받기 위해 금융기관 브로커에게 많게는 수천만 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에 환전이나 송금 수수료는 리스크 없이 손쉽게 거둘 수 있는 수입”이라며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이면서 수수료 비즈니스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거액의 이상 외화송금이 가능했던 배경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 외화송금 사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은행들은 외화 송금에 연루된 지점을 중심으로 대규모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은행들은 외화를 송금하는 고객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는 단순한 서류 이상 여부만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과 금융당국은 외화 송금과 관련한 증빙 서류 확인 책임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징계안은 기재부 유권해석이 나온 이후에 마련할 것”이라면서도 “은행이 불법적인 해외 송금을 막기 위한 기본 책무를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일정한 책임을 묻고 이상 외화거래를 적시에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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