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누깍은 바르셀로나의 버려진 현수막을 소재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메신저백, 지갑, 백팩’ 등을 선보였습니다. 현재 타이어 공기 튜브와 보트 돛에 쓰이는 소재까지 활용하며 총 5개국(스페인, 영국, 스웨덴, 체코,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 중입니다. 2022년 기준 제품의 환경적 가치를 환산하면 약 45.3톤의 탄소를 절감했다고요.
국내에선 나이키와 현대자동차 및 롯데백화점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며 업사이클링의 매력을 발산했죠.
프라이탁 마니아의 유랑기
2016년 누깍 코리아 출범 당시 국내에선 업사이클링의 개념조차 생소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유명한 건 프라이탁뿐.
프라이탁 마니아였던 누깍 코리아의 김경준 대표는 당시 활성화됐던 서유럽의 업사이클링 문화를 보며 내수 시장의 잠재력을 예견했습니다. 국내에 소개할 만한 해외 브랜드 10개를 사전 조사 후, 반기동안 각국에서 미팅하며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죠.
그의 선택은 누깍. 한국에서도 수급 가능한 폐현수막을 활용하는 점과 사람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자는 이념 하에 제품의 20%를 수감자들과 생산하는 경영 방식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국내에선 일정 규모와 매출액을 갖춘 기업만이 구치소에서 교육할 수 있기에 본사와 동일한 생산 방식을 고수할 순 없지만, 향후 사회적 소외계층 채용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네요.
친환경은 ‘덤’일뿐이에요
론칭 초반엔 프라이탁을 통해 업사이클링 제품에 익숙해진 27~35세 직장인들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최근 2년간 친환경 소비에 대한 관심이 늘며 누깍 코리아의 고객 연령대도 10살 가까이 어려졌고요. 학교에서 백팩이 불문율이던 과거와 달리 요즘 중고등학생 손님들에겐 메신저백이 인기라고 하네요.
높지 않은 가격대 역시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메신저백과 미니백은 평균 10만 원대로 프라이탁 대비 2배 이상 저렴합니다. 업사이클링 제품은 비싸다는 인식이 팽배했기에 가격대를 낮춘 전략이 고객 연령대를 넓히는 데 주효했죠.
한 번쯤 이미 버려진 소재로 제작한 상품을 왜 비싸게 판매하는지 의문이 드신 적 있을 겁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세척 및 재단 공정이 추가됨에 따라 생산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 결정적입니다. 실제 그는 프라이탁 가방들을 해체하며 원단마다 수차례의 꼼꼼한 마감 절차가 적용됨을 깨달았다고요.
반면 누깍 코리아의 경우 국내 생산 비용이 해외보다 저렴한 덕에 가격 인하에 성공합니다. 주로 소재의 세척 및 재단은 매장의 공방에서 진행하며, 봉제 및 조립 단계에선 동대문 공장과 협업하죠.
저가격으로만 승부한 건 아닙니다. 환경적 가치보다 상품성을 앞세운 점이 8년간의 생존 비결입니다. 이를테면 비주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소재부터 디테일하게 선정합니다. 동양미를 가미하고자 국립박물관들의 전시 홍보물을 수거하는 것이 한 예인데요. 협업이 아닌 이상 기업의 상업용 현수막은 활용하지 않고요.
업계 관행에 역행하는 디자인 철학도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업사이클링 브랜드는 타깃층이 좁은 만큼 남녀 공용의 캐주얼 콘셉트를 지향합니다. 반면에 누깍은 여성용 미니 핸드백과 아웃도어 백팩처럼 특정 고객군에 맞춰진 제품도 다채롭게 선보입니다. 마모되기 쉬운 모서리에 친환경 가죽 소재를 덧대는 등 내구성을 높인 전략도 한 몫하고요. 감성과 실용성 즉, 상품 본연의 가치에 무게를 둔 셈이죠.
다 같이 만들어보자
건대입구역의 커먼그라운드에서 단골을 늘려가던 누깍은 2019년 이태원점(누깍 까사)으로 이전합니다. 여러 패션 취향이 공존하는 동네처럼 누군가에게 또 다른 취향이 되겠단 포부를 갖고서요.
45평 규모의 누깍 까사는 그야말로 비비드한 가방 공장. 약 100가지 상품을 비롯해 오픈형 공방에서의 생산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공방 곳곳엔 자투리 모양으로 잘린 현수막이 즐비하고요.
참가비 2만 원만 내면 커스텀 가방을 완성할 수 있는 ‘위디자인’ 클래스 역시 묘미입니다. 업사이클링의 복잡한 과정상 비쌀 수밖에 없음을 알리고자 기획한 행사인데요.
소비자가 직접 원단 선정 및 세척, 재단까지 경험하는 것이 핵심이며 환경 관련 도서를 주제로 한 북토크 등 새로운 프로그램이 결합되기도 합니다. 올해에는 한글날에 맞춰 한글 현수막을 활용한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죠.
브랜드가 아닌 문화 알리기
ESG 경영이 화두에 오르며 누깍이 러브콜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간 ‘아모레퍼시픽, GS리테일, 웨스턴조선호텔’ 등 색채 뚜렷한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배경입니다. 인터뷰 당일에도 매장 앞엔 강남 교보문고에서 수거한 대형 현수막들이 깔려 있더군요.
여러 단계의 친환경 행보를 꾀할 수 있는 제안만 수락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령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에선 친환경 카드 지갑을 만들 수 있는 DIY 키트를 출시함과 동시에 폐현수막으로 커스텀 서비스를 제공하는 팝업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누깍 코리아에 따르면 브랜드가 아닌 업사이클링의 인지도를 증대시키는 것이 컬래버레이션의 목표입니다. 시장 규모 확산을 위해 브랜드와 관련된 문화부터 대중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죠.
누깍 코리아는 패션 업계에서 업사이클링으로 승부하려면 소재의 차별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트럭 방수포가 프라이탁의 상징성으로 귀결되듯 소재가 독특해야 원앤온리(One&Only)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요. 창업 초반과 달리 폐현수막을 활용한 패션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타이어 튜브와 보트용 돛이 누깍 디자인의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이유겠죠.
최근 국내에서도 방화복과 캠핑 텐트 등 패션 자원이 세분화되는 추세입니다. 그린워싱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러한 자원의 선순환이 거듭되길 희망합니다. 사회적 취지와 감성이 충족된 패션의 파급력은 강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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