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의 인수합병(M&A) 심사를 일반심사로 전환해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나 공시 의무를 적용받는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현행 ‘자산 5조 원’에서 높여 적용 대상을 줄이기로 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등 외국인을 기업 총수(동일인)로 지정하는 작업도 재추진하기로 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2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의 2023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보고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불거진 온라인 플랫폼의 ‘문어발 확장’ 문제를 막기 위해 빅테크 기업의 M&A는 일반심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현재는 신고된 기업 결합 중 경쟁 제한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면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만 따지는 간이심사를 진행한다.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은 서로 다른 업종과 결합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경쟁 제한성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고 대부분 간이심사만 받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현행 자산 총액 5조 원에서 기준 금액을 상향하거나 국내총생산(GDP)과 연동하기로 했다. 2009년 설정된 기준이 유지돼 국내 경제 규모와 맞지 않고 중견기업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보다 강한 규제를 받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 원 이상) 지정 기준이 2024년부터 GDP의 0.5%로 변경될 예정이어서 이와 발맞춘다는 취지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GDP의 0.2% 또는 0.3%로 할 수도 있고 자산 기준액을 6조∼7조 원으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자산 기준액이 7조 원으로 상향되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지난해 5월 기준 76개에서 56개로 20개 줄어들고 크래프톤, 삼양, 애경, 한국지엠, 하이트진로 등이 제외된다. 다만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계열사 간 주식 소유 현황,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현황 등을 정기적으로 공시하지 않아도 돼 공정위의 감시 기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과의 통상마찰 우려로 보류된 외국인의 대기업 총수(동일인) 지정도 재추진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쿠팡은 2021년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지만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규정이 없어 한국계 미국인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배우자나 동일인 2, 3세가 외국인이거나 이중국적자인 경우가 10여 개로 파악된다”며 “언젠가는 또는 조만간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어 기준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공정위의 외국인 총수 지정 움직임에 미국이 우려를 표시한 바 있어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협의를 해야 한다.
공정위는 2월 중으로 기업집단 정책네트워크를 가동하고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제도 완화 등 중장기 발전 방향도 모색하기로 했다. 금산분리는 대기업이 자사 금융사를 통해 마구잡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는 원칙이다.
이 외에도 공정위는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하도급법에 반영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간 불공정 계약 강요가 있었는지 등을 감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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