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가 쌍을 이뤄 대규모 투자에 나서던 글로벌 전략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용와 공급을 다변화하려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파트너를 다원화하려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벌어지고 있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새로운 파트너로 삼성SDI가 거론되고 있다. GM의 파트너 자리는 수년째 LG에너지솔루션이 지켜오고 있다. 두 회사는 2019년 합작법인(JV) ‘얼티엄셀즈’를 세운 뒤 지난해 8월 미국 오하이오주에 공장을 지어 가동을 시작했고, 테네시주와 미시간주에 각각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네 번째 공장을 두고서는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GM은 “미국에 네 번째 배터리 공장을 분명히 세우겠다”는 의견인 반면, LG엔솔은 GM에만 투자 여력을 집중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삼성SDI가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GM과의 합작이 성사될 경우,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에 이은 두 번째 합작이 이뤄지는 것이다. GM이 기존에는 파우치형 배터리만 사용해온 만큼 삼성SDI와 합작 시 각형·원통형으로 배터리 종류를 다각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SK온과 손잡고 북미 지역에 공장을 늘려오던 포드도 튀르키예에서는 파트너를 바꿨다. 포드는 SK온과 JV ‘블로오벌SK’를 설립해 미국 테네시·켄터키주에 총 3곳의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 코치그룹과 SK온, 포드가 합작공장을 지으려던 계획이 의견 차이 등을 이유로 무산되자 LG엔솔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LG엔솔은 최근 일본 혼다와도 JV를 세웠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디커플링을 이끌고 있다고 보고 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가 짝을 이뤄 안정적으로 배터리 공급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초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는 것도 JV의 강점이다. 이 때문에 일본 도요타-파나소닉, 중국 지리자동차-CATL처럼 자국 내 기업 간 JV들이 속속 설립되는 추세다. 반면 자국에 마땅한 배터리 기업이 없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한국 배터리 업체와 손을 잡았다.
완성차 업체들 입장에서는 한 곳의 배터리 업체에서 공급받는 것으로는 미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나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공급망 다원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수요가 공급보다 큰 상황에서는 배터리 업체가 힘이 센 ‘슈퍼 을’인 상황”이라며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찍부터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며 특정 회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에 맞는 파트너 찾기에 주력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에선 LG엔솔과 손잡고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완공, 내년 상반기 양산 목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SK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 합작 여부, 생산량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LG엔솔과 협력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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