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반도체 침체 기간 분석
침체 속도 빠르고 추락폭도 가장 커
자금 대거 몰렸다 수요 폭락 ‘판박이’
“AI반도체 성장땐 조기탈출 가능성”
현재 진행 중인 반도체 산업 위기의 양상이 시장 침체 속도나 수출 하락 폭 등의 측면에서 20여 년 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당시와 꼭 닮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5일 본보와 대한상공회의소는 과거 다섯 차례 반도체 침체와 현재 반도체 위기 진행 기간 중에 수출 증가율이 변동한 추세를 비교 분석했다. 현재 반도체 침체는 지난해 8월 수출 증가율이 ―7.8%(전년 동기 대비)로 마이너스 전환하며 본격화됐다. 이후 1개월 뒤 ―5.6%, 2개월 뒤 ―17.4%, 3개월 뒤 ―29.9%, 4개월 뒤 ―29.1%, 5개월 뒤 ―44.5%로 하락 속도와 하락 폭이 컸다.
현 추세는 과거 다섯 차례 반도체 침체 중 IT 버블 붕괴 시기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IT 버블 붕괴 때는 2001년 1월 ―2.0%로 처음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이후 1개월 뒤 ―9.1%, 3개월 뒤 ―33.2%, 5개월 뒤 ―51.2% 등 실적이 악화됐다. 반면 마이너스 전환 5개월 뒤를 기준으로 봤을 때 1차 치킨게임은 ―16.4%, 2차 치킨게임 ―3.7%, 스마트폰 성장 둔화 ―1.9% 등으로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과거 침체 시기는 △IT 버블 붕괴(2001년 1월∼2002년 3월) △1차 치킨게임(2007년 9월∼2009년 8월) △2차 치킨게임(2011년 4월∼2012년 9월) △스마트폰 성장 둔화(2015년 10월∼2016년 9월) △글로벌 수요 둔화(2018년 12월∼2020년 4월)로 분류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1990년대 후반 미국 등이 경기 회복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어 IT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며 “이후 돈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버블이 터졌는데, 팬데믹 때 자금을 풀었다가 통화 긴축에 따른 IT 수요 감소로 침체를 맞이한 현재 반도체 시장과 ‘완벽한 카피캣(복제품)’”이라고 설명했다.
IT 버블 붕괴 시기는 마이너스 전환 7개월 뒤 수출 감소 폭이 65.6%에 달했지만 2002년 3월 플러스 전환(7.7%)하며 14개월 만에 침체에서 벗어났다. 현재 반도체 위기가 IT 버블과 비슷하게 이어질 경우 올 3월까지 반도체 시장이 20%포인트가량 추가 하락해 바닥을 찍은 뒤 11월경에는 성장세로 전환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들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등 경쟁 상황에 따라 침체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치킨게임(23개월)과 2차 치킨게임(17개월) 때는 감소 폭은 작았으나 침체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김천구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세계 경기 둔화로 시작된 이번 반도체 위기에 기업들의 치킨게임까지 맞물리면 침체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2001년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누렸던 ‘중국 특수’가 있었지만 현재는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분절되고 있는 점도 시장 반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챗GPT’로 시작되는 인공지능(AI)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호재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은 2020년 220억 달러(약 27조 원)에서 2026년에는 861억 달러(약 107조 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에는 데이터 대량 처리가 가능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주로 쓰이는데 이 제품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간다. 빅테크 경쟁 재개로 고용량 서버용 D램의 수요도 증가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적극적으로 AI 반도체 개발 확대 전략을 공개하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달 31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자연어 기반 대화형 AI 서비스는 미래 메모리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