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택지조성사업이 완료된 지 20년 이상 된 100만㎡ 이상의 택지는 ‘노후계획도시특별정비구역’(이하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용적률 건폐율 등이 높여지고, 안전진단규제가 면제되거나 완화된다. 리모델링을 하면 15% 이내로 제한된 주택수 증가한도도 확대된다.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재건축 등 재정비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가 통합 처리되고, 기본계획 수립 등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국가나 관할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준다. 또 사업 진행을 책임질 ‘총괄사업관지자’ 제도가 도입된다. 동시다발적인 재건축 등으로 발생할 대규모 이주수요 대책도 사업시행자가 아닌 관할지역 지자체와 정부가 수립 지원한다.
국토교통부는 7일(오늘) 이러한 내용으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특별법’)을 마련해 국회 협의 등을 거쳐 이달 중 발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특별법은 현 정부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인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방안의 기본 얼개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지은 지 20년이 넘은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를 포함해 전국의 택지지구와 주변지역에서 추진해온 각종 재정비 사업에 힘이 실리게 됐다. 하지만 전 국토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재정비가 추진되면서 부동산 투기와 자재난, 인력난 등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1기 신도시 5곳에서 전국 택지지구로 확대
국토부에 따르면 특별법은 적용대상을 ‘노후계획도시’로 이름 짓고, 택지개발촉진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조성된 지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의 택지 등으로 규정했다.
100만㎡는 수도권지역의 행정 동에 해당하며, 인구 2만 5000명을 수용할 주택 1만 채 정도 규모이다. 도시 단위의 광역적인 정비가 필요한 최소 규모이다. 구체적인 세부 기준은 앞으로 만들어질 시행령에서 정해진다.
대상지역의 기준연령을 통상적인 시설물 노후 기준인 30년이 아닌 20년으로 크게 낮춘 것은 도시가 노후화되기 이전에 체계적인 계획 수립과 대응이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다.
또 100만㎡라는 면적 기준도 1개 택지가 아니라 인접하거나 연접한 2개 이상의 택지를 합친 경우와 택지와 동일한 생활권으로 묶인 연접 노후 구도심 등을 합친 경우도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특별법의 적용대상은 당초 1기 신도시에서 전 국토에 조성돼 있는 택지지구로 확대됐다. 또 비수도권 중소도시 원도심도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운영하는 택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초 기준 전국의 택지지구는 모두 1266곳이다. 이 가운데 준공된 지역은 853개에 달한다. 수도권 지역에 288곳, 비수도권지역에 565곳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전국에 20년이 넘은 100만㎡ 이상 규모의 택지지구는 모두 49곳"이라면서도 "실제 특별법 대상은 이보다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선 계획 후 지정…기본방침-기본계획에 따라 지정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선 국토부가 수립하는 기본방침과 이에 맞춰 지자체가 수립하는 기본계획의 요구조건을 맞춰야 한다. 이른바 ‘선 계획 후 지정’이다. 마구잡이 개발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 현재 기본방침과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기본방침에는 노후도시계획 정비의 목표와 기본방향, 기본전략, 기반시설 확보와 이주대책 수립, 선도지구 지정 원칙, 도시재창조 사업 유형 등이 담긴다.
기본계획은 노후계획도시를 대상으로 정해지는 특별정비구역과 신도지구 지정계획과 기반시설 확충 등에 따른 세부 계획 등이 주요 내용이다. 시장 군수가 10년 주기로 수립하고 5년마다 타당성 검토를 해야 한다.
또 관할지역 도지사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도지사는 국토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 다만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특별자치도 등은 별도의 승인 없이 국토부 장관과 협의해 기본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별도의 심의기구도 마련된다. 국토부에는 ‘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가, 지자체에는 ‘지방노후계획도시정비위원회’(이하 ‘지방위원회’)가 각각 설치된다.
● 안전진단 면제되고, 건폐율 용적률 높여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역세권 복합·고밀개발, 대규모 블록단위의 통합 개발, 이주단지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각종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등 혜택이 주어진다.
우선 재건축 안전진단이 완화되거나 면제된다.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은 시행령에서 정해진다. 면제되는 조건은 자족기능 향상이나 대규모 기반시설 확충 등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경우이다. 세부요건은 대통령령과 국토부가 정할 기본방침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주택을 많이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 건폐율 등도 완화된다. 특히 용적률 규제는 2종 전용주거지역을 3종이나 준주거지역 등으로 바꿔주는 방식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건물을 많이 지을 수 있고, 그만큼 부동산 가치가 크게 오르게 된다.
예컨대 2종에서 3종으로 바뀌면 건폐율(50% 이하)은 유지되나, 용적률은 상한선이 150% 이하에서 300% 이하로 2배 높여진다. 준주거로 바뀌면 건폐율(50%→70%)과 용적률( 100% 이상~150% 이하→200% 이하~500% 이하)이 모두 크게 올라간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 용도와 용적률, 건폐율 등의 규제를 없앤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즉 기존 도시계획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아파트와 오피스, 쇼핑몰, 호텔 등이 어우러진 초고층 복합 단지로 개발할 수 있는 ‘도시계획 치외법권’ 구역이다. 다만 이는 국토계획법이 개정된 이후 적용된다.
특별정비구역에서 리모델링을 한다면 현재 기존 주택 수의 15% 이내로 제한된 규제도 완화된다. 증가 세대수의 구체적 범위는 시행령에서 정해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20% 내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각종 인허가 원-스톱 처리로 간소화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도 마련된다.
우선 재건축 등 재정비 과정에서 건축법 경관법 등 각종 법령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인허가 과정이 통합 심의 처리된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에 통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원 스톱으로 심의절차를 진행하게 할 예정이다.
사업자가 재정비를 위해 진행하는 기본계획 수립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도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택지지구에 위치한 다수의 아파트 단지를 통합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를 주도할 하나의 사업자를 지정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마련된다. 또 자체적으로 사업자 선정이 어려우면 시장 군수가 조합이나 신탁업체, 공공기관을 사업자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불가피하게 여러 사업시행자가 나서게 되는 경우에는 전체 사업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총괄사업관리자’도 도입된다. 총괄사업관리자는 조정과 사업절차 지원, 기반시설 설치 기여금 및 분담금 관리 등과 함께 특별정비구역 해제 요청 등의 권한을 갖는다.
● 이주대책은 지자체가 세우고, 정부가 지원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할 이주수요에 따른 대책도 지원된다. 기존에는 재정비 사업자가 책임을 졌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즉 국토부가 기본방침을 통해 원칙을 정하면 지자체는 기본계획에서 이주대책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주계획을 책임질 ‘이주대책사업시행자’도 선정할 방침이다. 사업시행자는 모듈러 주택 등을 활용한 이주단지 조성과 순환형 주택 공급 등을 추진하게 된다.
이는 특별정비구역 지정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재건축 등이 추진되면서 이주수요가 대규모로 발생할 것에 대비한 조치다. 국토부에 따르면 수도권 1기 신도시의 경우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동안 대부분의 주택공급이 이뤄졌다. 특별법 시행 이후 엄청난 규모의 이주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별정비구역 지정으로 발생할 막대한 개발이익을 환수할 근거도 마련된다. 통상적인 수단인 공공임대주택 외에 공공분양, 기반시설, 생활SOC 등의 조성과 기여금 납부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 채납이 허용된다.
● 1기 신도시 이외 서울 노원 양천구 일대 수혜 기대
이번 조치로 수혜를 볼 수 있는 지역은 1990년대에 준공된 이후 노후화되면서 주거 질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도권 2~3기 신도시 분양으로 주택수요 유출이 컸던 노후 택지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수도권 1기 신도시와 서울 노원구 상계·중계·하계동, 양천구 목동 일대 등이다. 특히 노원구와 양천구의 경우 20년 이상된 아파트와 연립주택 비중(2023년 기준)은 각각 89.23%, 63.33%에 달한다.
이런 지역들은 대부분 도시철도 등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는 등 기반 시설이 양호한데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용적률 완화와 용도지역 변경이 가능해지고, 철도 역세권 주변은 고밀·복합개발로 토지효용이 높아질 수 있다.
적잖은 부작용도 우려된다. 무엇보다 마구잡이 사업 추진이다. 정부가 특별법의 대상을 당초 수도권 1기 신도시 5곳에서 전국 택지지구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지역에 대한 특혜 논란과 국토 불균형 발전에 대한 우려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대상이 전체 국토로 확대됨에 따라 동시다발적인 재정비 추진과 이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대규모 이주 수요 발생에 따른 부동산값 상승과 그에 따른 투기 우려와 함께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 확보 전쟁 등도 예상된다.
여기에 특별정비구역에서 시범사업적인 성격이 강할 ‘선도지구’ 지정을 둘러싼 지자체와 개별사업지들 간 과열경쟁은 불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는 지역간 갈등으로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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