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메리츠화재 등
잇따라 자사주 소각… 주주들 “환영”
韓 주주환원율 28%로 中보다 낮아
“자사주 소각 의무화등 제도 보완을”
국내 주식시장에 연초부터 ‘주주환원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권을 비롯해 제조업과 패션업계에서도 배당금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주주환원이 해외에 비하면 소극적이었던 탓에 주주들은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다만 실적에 따라 들쭉날쭉한 배당 성향과 소액주주 홀대 관행 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 주주환원 바람도 ‘미풍(微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주주환원 바람을 불러일으킨 선두주자 중 하나다. 지난달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이달 3일 발행주식 수 1%에 해당하는 3154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자사주 소각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보다 더 강력한 주주친화책으로 꼽힌다. 말 그대로 기존 주식을 ‘없앤다’는 얘기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 총량이 줄어 주당 가치는 상승한다. 주주들로서는 주가 상승 효과를 누릴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지난달 25일 메리츠화재도 1792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로부터 지배구조 개편 압박을 받은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향후 3년간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정책을 결의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과 함께 개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500대 기업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사주 소각 규모는 지난해 10월 기준 5조1191억 원으로 전년(4조5230억 원) 대비 1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 중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소각 목적의 처분 규모는 2조6257억 원으로 전체의 51.3%를 차지했다.
물론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주주환원 정책에 워낙 인색했던 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KB증권에 따르면 2010∼2020년 10년 평균 총주주환원율은 한국이 28%로 중국(3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주주환원율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 총액, 자사주 매입금 등 주주환원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반면 미국과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의 총주주환원율은 각각 89%, 68%였다.
미국의 애플은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을 펼쳐 기업 가치를 높인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2012년 이후 지난해까지 애플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들인 금액은 5820억 달러(약 731조 원)에 달한다. 자사주 소각은 물론이고 높은 배당금까지 유지하며 애플은 시총 3조 달러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편 국내 주요 금융지주들이 지난해 최대 실적을 기록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사들의 향후 주주환원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6일 “주주환원 움직임은 필요하지만 은행의 ‘공적 기능’을 고려해 위험자산 조정 등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해 배당 등 주주환원보다는 건전성이 우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주주환원 정책의 혜택이 실제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주환원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여전히 매입한 자사주를 주주 가치 제고가 아닌 경영권 보호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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