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으로 돈이 쏠리는 ‘역(逆)머니무브’가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 87조원가량 줄어든 요구불예금 잔액에 더해, 예적금에서까지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연초 증시가 ‘깜짝 랠리’를 펼치면서 한동안 개미들에게 외면당했던 증시로 자금이 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 1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588조6031억원으로, 지난해 연말(624조5866억원) 대비 35조9835억원 감소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감소했다. 2021년 연말 이들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711조8031억원으로, 1년 새 87조2165억원 줄었다.
요구불 예금이란 정기예금과 달리 입금과 인출이 자유로운 은행 예금을 말한다. 입출식 통장이 대표적인 요구불 예금 상품이다. 유동성이 높은 대신 연 0.1%대로 금리가 매우 낮은 게 특징이다. 은행의 수익성에 기여하는 바가 큰 저원가성 예금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예적금 잔액도 최근 2개월 연속 줄었다. 이들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예적금 잔액은 849조867억원으로, 직전달(855조6676억원)과 비교해 6조5809억원 감소했다. 5대 은행의 예적금 잔액은 지난해 11월 865조6531억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역머니무브’가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자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진 차주들이 여윳돈이 생기는 즉시 빚부터 갚아나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가계대출 잔액은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해 말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92조5335억원이다. 지난 2021년 연말(709조529억원)과 비교해 16조5194억원 줄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신용대출 잔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지난 연말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18조9763억원으로 전년(139조5572억원) 대비 20조5808억원 줄었다. 반면 이들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13조1416억원으로, 1년 새 7조7370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난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차주들은 여윳돈이 생기는 즉시 대출부터 갚아나갔다”며 “요구불예금은 물론 예적금을 깨서라도 신용대출 등 이자 부담이 큰 대출을 먼저 메꾸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시중 자금이 은행을 벗어나 증시로 향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2200선이었던 코스피가 지난달 8.44% 오르며 2400선을 다시 돌파하는 등 ‘새해 랠리’를 보이면서다.
개인 투자자의 증시 참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투자자예탁금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증시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51조521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0월6일(51조7942억원)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1월 월평균 67조원대였지만 감소세를 이어오면서 10월에는 49조5523억원으로 50조원이 붕괴됐다. 지난해 11월 48조7383억원, 12월 46조2760억원, 지난달 45조8622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달 1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이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많은 수준까지 오르면서, 예적금으로 몰리던 자금이 증시로 다시 쏠리고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채권 시장도 시중 자금의 ‘용처’로 거론되고 있다.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채권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해부터 채권 시장에서 순매수 규모를 늘리며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가 장외 채권시장에서 집계하는 개인의 채권 순매수액은 지난달 기준 2조829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3283억원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돈에는 꼬리표가 없어서 어디로 향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통상 은행 요구불예금과 예적금, 증시, 부동산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며 “새해 증시에 빨간 등이 켜지면서 은행으로 쏠렸던 자금이 조금씩 이동하고, 채권 시장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진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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