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넘는 국정과제 법안]
〈하〉 국회 문턱에 걸린 민생
예산갈등에 밀려 여야 논의 중단… 피해 커진후에야 “신속 일괄 처리”
실업급여 반복수급 개선 지연속, 한명이 23년 연속 받아 논란도
서울 양천구 빌라에 사는 이모 씨(42)는 3년 전 전세보증금 2억3400만 원을 날렸다. 그해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셋집에 가압류가 걸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이미 집주인이 잠적한 뒤였다. 이 씨는 앞서 2017년 전세계약 당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을 알아봤다. 하지만 해당 빌라의 공시지가가 낮고 전세보증금이 높아 가입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 씨는 “임대인이 문제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전세 사기 예방 대책으로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보증금을 여러 차례 떼먹은 임대인 명단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겠다는 것. 하지만 국회에서 관련법이 1년 이상 멈춰서 있다. 민생에 대한 국정과제 관련 법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악성 임대인 공개법, 국회서 1년 넘게 공전
HUG는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채무가 발생한 임대인 명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명단을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는 임차인에게 알리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이에 따라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를 위해선 관련법 개정이 필수이지만 국회 논의는 1년 넘게 지체되고 있다. 그사이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2020년 2408건, 4682억 원에서 지난해 5443건, 1조1726억 원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2021년 9월 발의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은 전세 사기가 사회적 논란이 된 지난해 9월에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지난해 말 예산안을 두고 여야 갈등이 본격화되자 법안소위 논의조차 중단됐다.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법안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 여부를 따져보고, 공개 대상 기준을 정해야 하는 등 논의할 내용이 적지 않다. 국회 관계자는 “전세 사기가 이슈화된 이후인 지난해 하반기에야 관련 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여야 갈등이 불거져 국회가 공전했다”며 “14일 국토위 소위가 열리면 관련 법안을 한꺼번에 논의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다른 법안들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집주인이 바뀌는 경우 세입자에게 통지하도록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인 2016년 김현아 전 의원이 발의한 뒤 21대 국회까지 5번 발의됐다. 하지만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 개선도 부진
퇴직과 취직을 반복해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여러 번 타내는 행태를 막기 위한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도 2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은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반복수급자들의 급여 수급액을 50% 줄이고, 단기 이직자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은 고용보험료율을 0.8%에서 1.0%로 올려 부담을 높이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취약계층과 청년들의 반발이 예상돼 의견 수렴 과정이 길어지고 있다.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한 사람은 2018년 8만2000여 명에서 지난해 10만2000여 명으로 4년 새 20% 이상 늘었다. 수급 횟수에 제한이 없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 연속으로 실업급여를 타낸 사람도 있다. 실업급여가 구직 의지를 꺾어 구인난을 심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세기업들은 “안 그래도 사람 구하기 어려운데 실업급여 때문에 더 어려워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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