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기 서민들의 이자 고통 속에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은행권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이 작심 비판에 나섬에 따라 금융당국의 후속 조치가 주목된다.
공공성을 강조하며 은행에 사회적 역할 확대를 압박해 온 금융당국은 이른바 돈잔치로 표현되는 은행의 성과급 문제부터 정조준할 전망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며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으므로 수익을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이른바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향후 금융시장 불안정성에 대비해 충당금을 튼튼하게 쌓는 데에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원회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자장사로 돈잔치 벌이자 “은행은 공공재” 연일 압박
윤 대통령이 은행을 콕 집어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금융위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도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고 국가 재정시스템의 기초”라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은행은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위기시 공적자금도 투입되는 만큼 공공재적 성격이 분명하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금융당국의 최근 행보도 윤 대통령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업무계획 간담회에서 “은행은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자금중개 기능을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등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은행들이 일종의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역할은 소홀히 한 채 과도한 수익성만 추구한다면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수 밖에 없어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은행의 공공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최근 어려운 대내외 경제 속에서도 은행만 나홀로 실적 잔치에 이어 성과급 잔치까지 벌이며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은행들의 ‘돈 잔치’는 사실상 서민들의 고금리 고통 속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사회적인 파장이 더 큰 상황이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이자이익으로만 39조6735억원을 벌어들이며 당기순이익 15조8506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시현했다.
금리 인상기 핵심 계열사인 은행의 급증한 이자 이익이 최대 실적의 바탕이었다. 가계와 기업에 가중된 이자부담으로 올린 성과인 만큼 은행이 공적인 역할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이 거센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국민·신한·우리은행 등은 희망퇴직 비용으로 직원 1인당 3억4400만~4억43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희망퇴직금에 법정퇴직금까지 더하면 1인당 6억~7억원의 퇴직금이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 성과급 제도 적정성 들여다본다…사회공헌기금 확대도 주목
윤 대통령의 ‘돈 잔치’ 대책 지시에 금융당국은 우선 은행 성과급 제도의 적정성부터 들여다볼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경영진의 성과급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미 금리 인상 기조라는 거시적 경제흐름에 따른 이자수익을 경영진 개인의 성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경영진이 경영을 잘해서 이룬 성과와 그렇지 않은 성과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단기성과가 아닌 중장기성과 시스템이 마련되도록 성과급 이연 지급제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도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성과급 관련해 금융사의 우수한 직원들의 기여를 통해 성장과 이윤창출이 이뤄졌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존중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면서도 “지난해 국내 금융시장 상황이 어려울 때 채안펀드 등을 통해 시장을 받쳐준 측면이 있고 금융당국의 역할과 다른 금융권이 도와준 부부도 있는데 그것을 오롯이 해당 금융사의 공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는 2020년 6월에 정부가 발의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에 근거해 성과급 체계를 개선할 방침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원은 보수와 성과급의 총액, 그리고 그에 대한 산정기준을 연차 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자산총액이 일정 규모 이상인 상장 금융사의 경우 개별 임원에 대한 보수지급계획을 주주총회에 설명해야 한다.
금감원은 정기검사를 통해 경영진의 성과급 체계 적정성을 들여다 볼 계획이다. 특히 현행법에 따라 ‘성과급 이연 지급제’가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지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연 지급제는 지배구조법에 따라 임원과 금융투자부문 직원의 성과급의 일정 비율을 2~3년 동안 나눠서 지급 받는 것으로 단기성과 주의를 배제하기 차원이다. 향후 당국의 방침에 따라 이연 지급제의 대상과 이연 기간이 더 확대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상생금융 강화에도 방점을 둘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업무계획을 통해 자영업자에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고정금리 전세자금 대출상품 공급도 추진키로 한 바 있는데 여기에 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또 은행 건전성을 위해 스트레스트 테스트를 정례화해 자본확충, 충당금 적립 확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은행권의 대손충당금·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특별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요구하는 제도도 상반기 중 도입한다.
금융당국은 상생금융 차원에서 은행의 사회공헌 기금 확대도 본격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지난달 27일 향후 3년간 총 5000억원 규모의 재원을 공동으로 조성해 긴급생계비 대출재원 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나가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놓고 금융당국에서는 은행의 막대한 이자수익에 비해 부족하다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은행권 공동의 기금 마련이 누가 더 사회공헌을 많이 하느냐의 경쟁 환경을 다소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원장도 “5000억원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지만 거기에 포함된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보면 과거 관행이나 통상적인 업무에 포함된 것들을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도 좀 있다”며 “또 단체로서 포장이 되다 보니까 사회 공헌의 경쟁적 환경이 조성이 안 돼 있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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