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농촌에 도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농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농촌 동네에는 이제 노인, 공무원, 군인뿐이라는 것이다. 지방 소멸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다. 강원 춘천시 신북읍 역시 과거엔 치킨집 하나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이곳에 70만 명이 몰렸다. 농업회사법인 ‘밭’이 운영하는 ‘카페 감자밭’의 감자빵을 사기 위해서다. 밭은 미국 품종이며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수미감자가 아닌 로즈홍감자, 청강감자 등 국산 품종의 감자를 사용해 감자빵을 만든다. ‘감자를 똑 닮은 빵’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덕에 지난해 매출은 약 213억 원으로 감자빵을 처음 선보인 2020년(약 50억 원)에 비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농업’ 하면 딱히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는 한국에서 카페 감자밭은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국에 여러 유사 업체가 생겼지만 감자빵을 검색하면 ‘감자밭 감자빵’이 상위에 노출될 정도로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고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2월 1호(362호)에 실린 밭의 브랜딩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우리 감자로 만든 감자빵
“창고에 쌓인 감자 60t을 보면 심장이 턱 막히는 듯했다.” 밭을 창업한 이미소 대표는 2016년 고향인 춘천에 돌아왔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정보기술(IT) 관련 회사에 취업한 지 약 6개월 만에 아버지가 농사지은 감자를 팔기 위해 귀농을 결심했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한국 품종의 감자만을 고집해 정성껏 재배했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감자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건 미국에서 개발된 수미감자다. 쉽게 부서지지 않아 요리에 넣어 먹기에 적합하고 아무 데서나 잘 자라 수요가 많다. 그러나 우리 감자의 품질 역시 수미감자 못지않다. 자색감자(보라밸리)는 2008년 모스크바 국제 감자 박람회에서 1등을 차지한 품종이다. 이 대표는 유기농감자협회의 초청으로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방문했다가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미국의 농부들이 한국 감자를 극찬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한국 감자의 우수성과 다양성을 알리겠다는 포부를 갖게 됐고, 적극적으로 감자 판매에 뛰어들었다.
그는 먼저 감자를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고민했다. 감자로 선식을 만들거나 농부를 테마로 한 카페를 열기도 했지만 반응이 크진 않았다. 그러던 중 흘려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얼핏 떠올랐다. “감자를 꼭 닮은 감자빵을 만들어 봐라.”
이 대표는 감자 함량을 최대로 높인 감자빵 개발에 나섰다. 로즈홍감자, 청강감자, 흰감자 등을 배합해 풍미를 높였고 감자를 200도 오븐에 100분 이상 구워 수분을 날리고 감자 본연의 진한 맛을 살렸다. 2020년 처음 감자빵을 선보였을 때는 하루에 50개도 채 팔지 못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점차 입소문이 났고 가게 오픈 1∼2시간 전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도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됐다.
●한정적 확장으로 지속 가능성 구축
하지만 감자빵 출시 두 달도 안 돼 300군데가 넘는 곳에서 유사한 콘셉트의 감자빵을 냈다. 카피 업체가 급속히 늘어나는 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밭은 무리한 확장은 지양하기로 했다. 급하게 생산 시설을 늘리다가 품질 관련 이슈라도 발생하면 ‘우수한 한국 품종 감자를 알리자’라는 밭의 비전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대신 각 유통 판로별로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되는 채널을 선점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에 있던 2021년에는 마켓컬리에 입점하기로 결정했다. 마켓컬리는 제품을 입점시키기로 하면 이와 유사한 제품은 최대한 들여놓지 않는 방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밭이 추구하려는 방향과 잘 맞았다. 이후 생산량이 늘어나는 대로 쿠팡, 롯데홈쇼핑 등으로 채널을 넓혀 나갔다.
밭은 직접 광고 대신 감자빵의 스토리를 책, 미디어 등을 통해 확산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 대표는 2021년 11월 감자빵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냈고 매체나 기관들로부터 인터뷰, 강연 요청을 받아 이를 또 다른 홍보 기회로 활용했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밭과 같이 한정적 확장 전략을 펼치면 브랜드의 스토리가 서서히 확산된다”며 “이로써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고갈되지 않고 ‘쫀쫀하게’ 유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농촌 문제 해결하고 세계로 뻗어갈 것
이 대표는 “밭은 농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업”이라고 말한다. 밭에는 평균 연령 30대 초반의 직원 200여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다. 밭은 농가 소득 증대에도 일조했다. 과거 감자 재배 시장은 일부 식품 및 유통 대기업 외에는 농가와 계약 재배를 맺을 곳이 없다 보니 경쟁이랄 게 없었다. 하지만 밭이 시장에 참여하자 10년 가까이 요지부동이었던 감자 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동빈 부대표 취임과 더불어 ‘밭 2.0’ 경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밭은 지난해 12월 첫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동훈인베스트먼트가 결성한 농식품벤처스타 2호 투자조합으로부터 850억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25억 원을 투자받은 것이다. 밭은 이를 바탕으로 공장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신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해외 주요 한인 마트의 제안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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