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권에 대해 ‘돈 잔치’를 벌인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자 주요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최저 4%대까지 줄지어 인하하고 있다. 당국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은행들이 허겁지겁 금리를 조정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은행간 경쟁을 강화하고 합리적인 금리 산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KB·우리·카뱅, 줄줄이 대출 금리 인하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28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등 4개 대출 상품의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말 최대 0.75%포인트, 올 1월 최대 1.30%포인트 인하에 이어 석 달 새 3번째 대출 금리 인하를 결정한 것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금리로 금융소비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만큼 실효성 있는 지원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금리 인하가 적용되면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저 연 4.66%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은행도 21일부터 우대금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낮췄다. 거래 실적과 상관없이 주택담보대출 6개월 변동금리(신잔액코픽스 기준)에 0.45%포인트, 5년 변동금리엔 0.20%포인트씩 우대금리가 일괄 적용된다. 카카오뱅크도 이날부터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대출의 금리를 최대 0.70%포인트 인하했다. 두 상품의 최저 금리는 각각 연 4.286%, 4.547%로 낮아졌고 최대 대출 한도는 각각 5000만 원, 4000만 원씩 늘었다.
이처럼 은행들이 줄줄이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은행의 과점 체제와 ‘돈 잔치’에 대한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달 13일에도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재차 강조하며 은행들이 고금리로 벌어들인 수익을 국민들에게 혜택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지적 나올 때마다 출렁이는 금리… “근본적 해결책 아냐”
은행들은 지속된 고금리의 수혜를 입으며 지난해에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이자이익을 냈다. 지난해 8월 공시가 시작된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던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 차(정책서민금융 제외)도 지난달 다시 일제히 커졌다.
최근 ‘이자 장사’ 지적이 이어지자 은행권은 지난주 3년간 최대 10조 원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발표했지만, 실제 출연하는 재원은 7800억 원뿐이고 나머지는 보증 등을 통한 간접 지원 효과라는 점이 알려져 ‘부풀리기’ 논란이 일었다.
이에 은행들은 대출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금리 인하와 예대금리 차 축소 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저금리 때부터 은행들은 사회공헌에 꾸준히 나서고 있는데 성과급 등 일부 요소만 부각돼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소비자 어려움이 크다는 점에 공감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금리 인하를 우선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금리가 요동치는 현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에 당국이 계속 개입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인터넷은행 등을 활용해 은행간 경쟁을 촉진시키면 금리가 자연스럽게 조정될 것”이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금과 대출 금리 간 시차를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금리 산정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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