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대기업은 손흥민-BTS 같은 국가대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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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가 바라본 기업, 바라는 기업]
“기업 호감” 35%, “비호감” 11%
일자리-복지 ‘안전망’으로 여겨

“MZ세대에게 대기업은 손흥민이나 BTS와 같습니다. 기업이 잘나가야 내게도 경제적으로 이득이 온다는 생각에서죠. 기업은 국가 대표고, 총수들은 ‘셀럽’이 됐습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속하는 서울의 한 스타트업 종사자 정세윤 씨(33)의 말이다. 기업들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이다.


21일 본보가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팀과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의 3분의 1 이상(35.1%)은 기업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문은 여론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해 20∼39세 전국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기업 호감도 조사에서 ‘중립’은 53.6%였고, ‘비호감’ 응답은 11.3%에 그쳤다. 비호감 대비 호감의 비율이 3배가 넘은 셈이다.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경기 침체기의 취업난을 몸으로 겪고 있는 MZ세대들은 기업이 경기 침체기 고용과 복지를 제공하는 ‘안전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우선 MZ세대들은 ‘본인이나 자녀의 진로로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최다인 23.5%가 ‘대기업 취업’을 선택했다. 통념적으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22.5%)’을 2위로 밀어낸 것이다.

MZ세대 신뢰도, 기업>정부>정치인… “기업은 잘못하면 사과”


〈상〉 2030 시선속 한국기업

MZ, 전문직보다 대기업 취업 선호
기업의 최대 역할 ‘고용 확대’ 꼽아
해외기업보다 ‘품질-의사결정’ 장점
‘조직문화-경영윤리’엔 부정적 평가


3위는 ‘외국계 기업 취업(12.8%)’이었다. 과거 선호도가 높았던 ‘공무원(9.3%)’이나 ‘스타트업 창업(2.9%)’ 등은 모두 후순위로 밀려났다.

진로 1순위로 대기업을 택한 이들의 42%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라고 응답했다. 이어 ‘고용이 안정적이어서(12%)’,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 때문에(11%)’를 이유로 꼽았다.

MZ세대 다수는 이런 결과에 대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배경으로 짚었다. 고소득과 사회적 명예가 있지만 투자 비용이 높고 업무 강도가 센 전문직보다 안정적인 소득과 ‘워라밸’을 꾀할 수 있는 대기업의 접근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금융계 대기업 직장인 박모 씨(33)는 “요새는 소개팅에서도 회계사보다 삼성전자가 더 선호된다”며 “변호사나 다른 전문직도 결국 영업을 해야 하고, 업무 강도도 높은 데다 성과 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 씨(26)도 “이젠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라며 “의사는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 힘들게 얻는 직업이고, 주변의 변호사들도 워라밸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가장 집중해야 하는 역할로는 ‘적극적인 고용 확대’가 첫 손에 꼽혔다. 이어 ‘지배구조 투명화를 통한 신뢰 구축’과 ‘임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 순이었다. MZ세대가 중시한다고 여겨지는 환경 문제 해결(6위)과 사회 문제 해결(9위)도 이에 비하면 후순위로 밀렸다. 한국 기업의 변화를 평가하라는 설문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부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응답한 이들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복수응답)로 ‘불투명한 지배구조 지속’(63.2%)과 함께 ‘고용 축소’(51.2%)를 선택했다.

회사원 최모 씨(28·여)는 “젊은 세대는 정치적인 담론을 ‘586세대’ 등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고 본다. 경제적인 영역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활동이 더 솔직하고 실리적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MZ세대가 고용 창출을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로 꼽은 것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시대·사회적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MZ세대들은 ‘기업·기업인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그렇다’(20.2%)보다 ‘그렇지 않다’(31.2%)는 답변을 더 많이 내놓았다. 48.7%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다만 기업·기업인에 대한 불신은 상대적으로는 낮은 편이었다. 정부(지방자치단체 포함)나 공무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7.3%였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4.6%였다. 국회 또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 응답은 5.8%에 불과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81.4%로 불신이 가장 컸다.

이는 1995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발언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결과다. 대학원생 유모 씨(30)는 “정치인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적반하장 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기업들은 잘못한 게 드러나면 바로 고개 숙여 그래도 사과를 한다는 점이 큰 차이 같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을 해외 기업들과 비교해 바라보는 시각도 선명했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비해 가진 상대적인 장점에 대해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이 좋다’는 응답이 23.0%로 1위를 기록했다.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20.5%), ‘혁신 역량이 뛰어나다’(18.3%)가 뒤를 이었다. 반면 해외 기업에 비해 ‘수평적 조직문화와 거리가 멀다’(21.0%), ‘경영진이 윤리적으로 깨끗하지 않다’(20.0%), ‘소액주주를 존중하지 않는다’(11.4%)는 부정 평가가 나왔다. 소비자로서 제품 경쟁력에선 한국 기업을 인정하면서도 구성원으로서 평가하는 한국 기업은 MZ세대에겐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MZ세대가 체감하는 한국 기업의 변화 방향은 긍정적이었다. ‘한국의 기업들이 최근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긍정적으로’가 5.0%, ‘조금 긍정적으로’가 62.7%였다.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긍정적 변화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한국 기업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생존 및 성장하기 위해(28.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경묵 교수는 “정치적 담론이나 명분보다는 실리를 우선하는 MZ세대 특성상 기업과 재벌 호감도가 타 연령대 대비 높은 특성이 드러났다”며 “우리 기업들이 MZ세대의 인식을 반영해 그들의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조직 운영 방식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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