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반도체 패권과 율곡의 10만 양병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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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2023년 세계는 기술을 전략자산으로 활용하는 ‘경제 전쟁’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는 신년호에서 공동번영의 세계화는 퇴조하고, 각자도생의 제로섬(Zero-Sum)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패권 경쟁의 중심에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있다. 미-중 분절화(디커플링)와 가치사슬(GVC) 단절의 직접 영향권에 있으며,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원인도 반도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한 제반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조선시대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떠올리게 된다. 국난 극복을 위한 인력 양성을 역설하신 탁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병력이 승리의 조건인 것처럼, 오늘날 반도체 패권은 초일류 전문 인력에 좌우된다.

아쉽게도 한국 반도체 인력시장은 3중고를 겪고 있다.

첫째, 우수 인력의 대외유출 위험에 놓여 있다. 미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2030년까지 추가로 인력 100만 명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에 반도체 공장 신설이 집중되면서 우리 인력에 대한 스카우트 열풍이 예상된다. 둘째, 국내 과학 영재 확보가 어렵다. 명문 공대보다 평범한 의대가 선호된다. 취업시장에서도 반도체 기업이 플랫폼 테크에 밀린다. 셋째,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 약 20만 명의 기존 인력은 대부분 메모리와 파운드리 제조 분야에 몰려 있다. 반면 향후 수요는 팹리스 설계, 첨단 패키징 등 후공정 및 소재·장비개발 인력 부분에 집중될 것이다.

글로벌 경쟁, 직업 문화 및 산업 특성이 맞물려 발생한 인력난을 해결할 묘책은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율곡은 북녘 오랑캐에 대비하기 위해 10만 육군을 주창했지만, 조선은 바다 건너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미래를 내다봤다면 해군을 육성했을 것이다.

이처럼 주어진 현실에서 장점은 살리되 미래 수요를 정확히 반영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세계 제일의 산학연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제는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을 병행하며 제조와 설계 인력을 양성해 초격차 경쟁력을 창출하는 한국형 인력양성모델이 필요하다.

정부는 종합반도체 기업과 ‘핵심기술 개발과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첫걸음을 내디딘다. 향후 10년간 정부와 민간이 공동 투자하고 유수의 대학 및 연구소가 참여하여 반도체 생태계의 모든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개발을 진행하며 초일류 인력 2000여 명을 양성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결집하여 향후 10년간 2000명의 반도체 첨단 인력을 성공적으로 배출하고, 이들이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를 헤쳐 가는 우리 경제의 주역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반도체 패권#율곡#10만 양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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