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3일 기준금리를 연 3.50%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기준금리 인상과 ‘헤어질 결심’을 내비쳤다.
이런 결심을 가로막는 것은 미국과의 금리 격차, 그리고 환율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기존 최대치인 1.50%포인트(p) 혹은 그 이상이 될 전망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기존과 같은 수준에서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역대 가장 길었던 기준금리 연속 인상 기록은 비로소 깨졌다.
앞서 금통위는 2021년 8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뒤 지난달까지 1년 반 기간 동안 10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00%p 인상했다. 특히 작년 4월부터는 매 기준금리 결정 때마다 인상 결정을 내려 7연속 인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동결은 이러한 2021~2023년 금리 인상 사이클에 마침표를 찍었을 여지가 있다.
이미 연 1%대 저성장이 전망된 국내 경기 상황과 가계 이자 부담 증대, 부동산 침체로 인한 금융 불안 가능성 등이 추가 금리 인상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1>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증권사 전문가 10명 전원은 현 3.50%를 최종 기준금리 수준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환율 등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다.
이번 동결로 인해 한국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됐다. 현재 한미 금리는 1.25%p 차로 역전돼 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다음 달에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단 한 단계(0.25%p)만 올려도 기존 최대 역전 폭인 1.50%p에 이르며, 만일 빅 스텝(0.50%p 인상)을 밟는다면 1.75%p로 역대 최대 격차를 경신하게 된다.
당초 시장의 예상은 연준이 다음 달 베이비 스텝을 밟은 뒤 아예 인상을 멈추거나, 한 차례 추가 인상 이후 기준금리 인상을 마무리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달러 강세가 완화되면서 연초 환율은 1200원대로 안정세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 내 뜨거운 고용지표와 물가 오름세 등에 따라 연준이 다음 달 빅 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환율이 두 달 만에 1300원대를 돌파하는 등 강달러 현상이 되돌아오는 양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연준의 향후 행보에 관한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업무보고를 하면서 “연준 등 주요국 최종금리 수준과 지속기간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환율 1300원 선은 한은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1300원 수준까진 오를 수 있다고 본다”며 “이번 동결 결정이 추후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곤 보지만 기본적으로 환율 상승의 배경은 단순 금리차보단 최근 경제지표의 기대치 상회와 연준의 긴축 강화 기대감으로 인한 달러 인덱스 자체의 반등”이라고 설명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계속 오른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작년 4분기부터 1210원까지 떨어진 환율이 되돌려지는 조정으로 보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금리 격차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그 정도까지 문제되는 상황은 아니라고 보이고, 지금 상황을 외환시장 불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진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위태로운 지점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향후 추가 인상을 고민할 경계점으로 환율 1350원 선을 지목했다.
백 연구원은 “환율이 지금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면 통화정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특히 1350원 이상 튀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음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오 연구원은 “향후 통화정책에 있어 외환시장이 중요해 보인다”라면서 “작년 하반기 기준금리를 굉장히 빠르게 올렸던 원인이 환율인데, 이 부분이 불안하면 사실상 금리 동결이 되돌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시장의 시선은 연준의 향후 행보로 향한다. 한은이 추후 금리 인상 여부를 확정짓기 위해서는 최근 강달러를 이끈 근본 원인인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실제로 확인해 봐야 한다.
오는 4월11일 차기 금통위까지 미국 내 물가가 잦아들거나 연준이 3월 베이비 스텝에 그친다면 시장의 기대가 조정되면서 환율 변동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 반대라면 한은이 받을 금리 인상 압력은 높아진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금리를 인상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얘기가 있을 수 있다”며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0.25%p가 아니라 0.50%p로 다시 높이는 선택을 할 경우 한국도 금리를 높일 수 있다. 다만 점진 인상이라면 달러 변동성을 확대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다면 내외 금리차가 외환시장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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