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연 1%대 이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건국 이후 역사상 5번뿐이다. 그마저 외환·금융위기 등 대형 경제위기가 터진 때가 대부분이다.
한은은 2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0.1%포인트(p) 내린다고 밝혔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작년 11월 발표한 3.6%에서 3.5%로 0.1%p 낮췄다.
연 1%대 성장률은 한국 경제사를 통틀어 낯선 수치다.
한국이 1%대 이하 저성장을 한 적은 △건국 초반 1956년(0.6%)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0년(-1.6%)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9년(0.8%)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0.7%) 등 5개 연도뿐이다.
경제 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대형 위기 직후가 아닌, 오히려 코로나19로부터 세계 경제가 움트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이같이 낮은 성장률이 예상된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이미 우리나라는 작년 4분기 0.4% 역성장을 기록했다. 우리 경제의 양대 축인 민간소비·수출이 모두 부진한 결과였다.
작년 연간으로 보면 한국 경제는 민간소비에 기대어 당초 전망치인 2.6% 성장을 달성했다. 그런데 올해는 고금리·고물가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역(逆)자산효과로 인해 민간 주체의 소비 여력이 제한되면서 내수의 지원 사격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 같은 경기 흐름을 두고 이창용 한은 총재는 침체의 초입이 보인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지난 21일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에서 “경기 침체를 음(陰)의 성장으로 말하면 지난 4분기 역성장으로 인해 시작 징후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지난 17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우리나라에 경기 둔화 국면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은 이 같은 성장률 저하의 많은 부분이 해외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세계 경제에 별 문제가 없는데 한국만 힘든 것처럼 과도히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작년 4분기 역성장을 설명하며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보다는 역성장 폭이 작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용 총재도 작년 11월 경제전망 직후 “전 세계가 다 어려울 때 우리만 별도로 높은 성장률과 낮은 물가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면서 과한 비관론을 일축했다. 그는 지난 3일 범금융권 신년 인사회에서는 “경제 상황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지레 위축될 경우 오히려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상반기 혹한이 지나면 하반기 반등이 예상된다.
연말로 갈수록 글로벌 경제와 반도체 업황 회복 등이 가시화돼 수출 개선이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출산 등 인구구조 변화와 생산성 개선 정체에 따라 장기 저성장 궤도에 진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기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은 지속 하락해 2047년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한다. 분석 대상 38개국 중 꼴찌다.
이 같은 장기 저성장 우려를 떨치려면 기술혁신과 함께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체질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한은 조사국 거시재정팀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팬데믹 위기 이후 높아진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생산성 등 경제의 기초체력을 약화시켜 장기 저성장을 초래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이려면 디지털 전환 등 기술혁신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구조조정, 규제 개선 등 경제체질 개선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강화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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