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커피는 돼지고기보다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2배 많습니다. 이는 재배와 물류 과정을 검토한 결과인데요. 커피는 폐기 과정에서도 탄소를 배출합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 때마다 약 15g의 원두 찌꺼기(커피박)가 발생, 생활 폐기물로 분류돼 매립 또는 소각됩니다. 소각할 경우 1톤(t)당 338kg의 탄소가 배출되죠.
소셜벤처 포이엔(4EN)은 여기에 주목합니다. 커피박을 새활용(업사이클)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죠.
버리기에 아까워
2005년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배출권거래제(ETS)를 도입하며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이 할당받은 배출권(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의 여분 혹은 부족분을 구입하거나 매각할 수 있는 제도죠. 이호철 포이엔 대표는 이 지점에서 ‘탄소배출권’ 사업을 떠올립니다. 그가 창업한 2011년만 해도 국내 ETS 시장은 없었지만 곧 생겨날 것으로 예측했죠.
포이엔은 토양 생태복원 기업으로 출발해 온실가스를 낮추는 비료, 토양개량제 등을 개발해 판매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춧대와 땅콩껍질 같은 농업부산물 활용했는데 가격도 비싸고 농민들에게서 수급하기도 어려웠죠. 이 대표는 커피박에서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아내 덕분에 하루에도 커피박이 몇 kg씩이나 버려지는 것을 알고 있었죠. 커피박은 단일로 배출되는 만큼 활용도 쉬웠습니다.
비료나 연료로 활용할 때 효율도 좋았죠. 비료의 3요소(질소·인·칼륨) 중 질소와 인의 함량이 높습니다. 커피박으로 만든 고형 연료는 기름 성분이 약 15%라서 화력도 뛰어나죠.
기존에도 커피박을 활용해 연료를 만드는 업체들이 있었지만 포이엔은 자체적으로 ‘열팽창’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붕어빵처럼 몰드에 반죽을 넣어 만드는 기법인데 발열량이 보다 높고 연기 발생을 줄여주죠.
이제는 수급할 차례입니다. 마침 커피박 처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있었습니다. 포이엔은 지난 2016년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받은 후 매일유업과 스타벅스와 커피박 수급 계약을 체결합니다. 현재까지도 매월 각각 250t과 100t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죠.
행정안전부 주관의 지역 균형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성동구, 경기도 화성시·안성시 등에서 커피박을 수거하는 사업도 전개합니다. ‘쏘카’와 ‘현대오일뱅크’도 참여해 전기차로 카페를 방문하며 모은 커피박을 주유소에 두면 한 번에 수거해 갑니다. 커피박은 생활 폐기물로 분류, 개인이 제공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종이컵과 빨대 등도 수거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화분부터 연료까지
다양한 채널로 수거한 커피박은 포이엔의 손을 거쳐 새로 태어납니다. 바이오 플라스틱이 대표적인데요. ESG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현대자동차와 GS칼텍스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자동차 내장재를 개발했습니다. 특유의 나무 무늬 패턴이나 색상 때문에 인테리어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 기업에 테이블과 의자를 납품하는 형식이죠.
커피박 수급 계약을 맺은 기업과도 다양한 협업을 모색합니다. 매일유업 관계사인 폴바셋 서울지역 매장에는 트레이와 타일을 제공하죠. 지난 10월 스타벅스코리아는 ‘업사이클링 1호 제품’ 커피박 화분을 이벤트성으로 출시했습니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포이엔은 국립환경공단의 재활용환경성평가 자격 요건을 갖춘 업체라서 협업을 결정했다”면서 “커피박의 업사이클링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갈 예정”이라고 전합니다.
바이오차(Biochar)를 활용해 비료와 숯도 만듭니다. 바이오차는 대기 중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고체 물질에 가둔 것인데요. 이를 비료로 활용하면 대기 중 탄소를 토양에 격리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효과가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게다가 가축 분뇨의 악취를 90%가량 줄이기도 하죠. 바이오차를 만들 때에는 커피박뿐만 아니라 참깨 영농조합 등에서 얻은 농업부산물도 함께 활용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석연료(석탄·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고형연료(펠릿)가 주력 사업입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함께 연구해 화력발전 과정에서 쓰이는 펠릿의 대체재를 개발했는데요.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를 입증한 덕분에 포이엔은 국내 농업 분야 민간기업 최초로 탄소배출권 승인을 따냅니다. 이 대표가 창업하며 목표로 한 배출권 사업의 기반이 되는 것이죠. 이어 산업용 연료, 미생물 연료 전지 등도 개발 중에 있습니다.
고래 save earth
“지구에서 가장 탄소 보유량이 큰 생명체가 고래에요.”
이 대표의 명함에 그려진 고래 한 마리가 궁금해 묻자 그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고래 한 마리는 일생 동안 평균 33t의 탄소를 제거합니다. 벤처계의 고래가 되겠다는 의지에 힘입어 해외로도 뻗어갑니다. 포이엔의 주요 매출은 해외에서 벌이는 CDM(청정개발체제)과 RE100 같은 온실가스 배출권 사업에서 발생합니다.
CDM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투자해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도 해결하는 시스템입니다. RE100은 기업이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인데요.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면서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필수’ 캠페인이 됐습니다.
포이엔은 대기업과 협업을 통해 아직 국내에선 불모지에 가까운 CDM 사업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인데요. SK에너지와 손잡고 미얀마에서 땅콩껍질로 숯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미얀마의 땅콩 생산량이 세계 5위라는 데서 착안했죠. 문제는 2020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터져 현재는 국내 직원은 모두 철수하고 현지 직원들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내년 총선이 관건이라고 말하네요.
올해 초부터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손잡고 인도네시아에서 축산 분뇨를 바이오가스로 변환하는 CDM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어 우즈베키스탄에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짓는 사업도 수주했죠. NH투자증권과 약 20억 원 규모의 탄소배출권 거래 계약도 조율 중일 정도로 다양한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탄소 중립 흐름 속에서 친환경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 뛰어드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종이로 각종 가구를 만드는 페이퍼팝 박대희 대표는 “기업이 20년 뒤에도 살아남으려면 지속가능성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폐기 단계까지 고민하지 않고 디자인과 가격에만 집중하는 사업 모델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비건 패션 브랜드 쏘왓을 운영하는 소설희 대표는 우려도 함께 나타내는데요. “버려지는 것이 아닌데도 불필요하게 업사이클링 해서 친환경 이미지만 도려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포이엔은 농업이나 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의 벤처회사들과 머리를 맞대 아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축하는 데까지 계획하는데요. 커피 한 잔에서 출발한 변화가 어떻게 지구를 지켜갈지 시선을 떼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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