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주택 10년 만에 다시 7만 채 넘어서
해법 놓고 주택업계와 국토부 팽팽한 이견
원 장관, 주택업계에 ‘반양심적이다’ 직격탄
주택업계, 업계 동반 부실 우려 크다 주장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말 홍수를 이룬 부동산 정보 가운데 알짜를 찾아내 그 의미와 활용방안 등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반 양심적인 얘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부 기자실을 찾아 이같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원 장관은 정치인 출신답게 평소 거침없는 화법을 많이 씁니다.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설노조에 대해 “약탈적 조폭 집단”이라고 쏘아붙이는 식입니다. 이날 발언도 그는 여러 현안에 대한 국토부 입장을 설명하던 도중에 나온 것입니다.
타깃은 최근 급증하는 미분양주택 해결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건설업계였습니다. 그는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마찰 때문에 생긴 소비자들의 소극성을 어떻게 세금으로 부양하느냐”며 “이건 반시장적이고, 반양심적인 얘기”라고 질타했습니다. 이어 “분양가를 낮춰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정책 당국이 고민할 수 있지만 지금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며 정부 지원 가능성도 일축했습니다. 한마디로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 분양가를 먼저 인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원 장관의 발언에 주택업계의 반응은 뜨악합니다. 같은 날 비슷한 시점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분양 주택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토론회를 진행하며 여론몰이에 나섰던 업계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택업계 관계자들은 주제발표 등을 통해 “(현 상황을 방치하면) 연내 미분양이 12만 채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거나 “시행사와 건설사의 동반부실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미분양주택 증가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1월 말 현재 7만 5000여 채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7만 채 선을 넘었습니다. 정부가 ‘위험선’으로 삼고 있는 6만 2000채를 이미 훌쩍 넘어선 수준입니다. 그런데 민간업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원 장관의 요구대로 분양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재가격과 인건비가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자금조달 비용이 치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데에는 높은 민간주택 분양가가 어렵사리 진정된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미분양주택과 이의 해법으로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분양가 인하를 둘러싼 논란은 올 한 해 부동산시장의 핵심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미분양주택을 둘러싼 양측의 속내와 분양가 인하 가능성 등을 짚어봅니다.
● 지난달 미분양 7만5000여 채…‘빨간불’ vs ‘노란불’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 5359채. 전월(6만 8148채)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10%가량 늘어났습니다. 2012년 11월(7만6319채) 이후 10년 2개월 만에 최대 규모입니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하지 못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7546채나 됩니다. 전월보다 0.4%(28채) 증가한 수치입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1만 2257채)보다 비수도권(6만 3102채) 물량이 83.7%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다만 증가율은 비슷합니다. 수도권(증가율·10.7%, 주택수·1181채)이나 비수도권( 10.6%·6030채) 모두 10%대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규모별로는 85㎡(전용면적 기준) 초과 중대형이 8926채로 전월(7092채)보다 25.9% 뛰었습니다. 85㎡ 이하는 6만 6433채로 전월(6만 1056채) 대비 8.8% 증가에 머물렀습니다.
이같은 수치에 대한 민간과 정부의 해석에는 적잖은 온도차가 있습니다. 일단 1월 미분양 주택은 미분양주택의 20년 장기 평균이자 정부가 위험선으로 보고 있는 ‘6만 2000채’를 훌쩍 넘는 규모입니다. 이를 근거로 주택업계에선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셈”이라며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열린 토론회에서 제1주제 발표자였던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초기분양률이 크게 낮아져, 미분양 주택이 연내 12만 채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며 “미분양 주택 잠재리스크에 대한 철저한 사전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제 2주제 발표자였던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경제금융·도시연구실장은 “지난해 3분기 이후 전국적으로 분양률이 급락하고, 주택사업에서의 정상적인 대출금 상환가능성이 낮아지는 등 시행주체와 건설사의 동반부실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금융 조달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에 앞선 1월 말에는 중소주택업체 모임인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정원주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택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정부가 미분양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 회장은 “공기업이 나서서 민간 미분양 주택을 적정 가격에 매입하거나, 미분양 주택을 매수하는 사람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제외하는 규제 완화”를 주문했습니다.
반면 국토부는 현재 미분양주택 물량이 위험수준과는 거리가 멀다고 분석합니다. 지난해 건설사들의 막바지 밀어내기 분양으로 미분양이 증가한 것이기에 지금 당장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분기별 공급량은 4분기(10~12월)에 9만 9000채로, 1분기(1~3월·6만 5000채)나 2분기(4~6월·5만 1000채) 3분기(7~9월·7만 2000채)에 비해 2만 7000~4만 8000채가 많았습니다.
이런 분석에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많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원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선분양제라 미분양을 전부 악성이라 볼 수는 없다”며 “(준공 후 미분양과 같은) 악성 미분양도 장기 평균의 4분의 1보다도 낮고, 이달에 늘어난 건 얼마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선분양이라 준공 때까지 업체가 가격 할인 등을 통해 미분양을 처리할 수 있어 준공 후 미분양물량 수준이 중요한데, 그 규모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원 장관은 또 “수도권이나 입지가 차상위 정도 되는 곳은 의미 있는 숫자로 해소 중이고 최대 미분양 지역인 대구도 추가되는 미분양 규모가 100채 수준”이라며 “전체적으로 ‘보합’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현재는 ‘노란불’이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 중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다시 오르는 분양가
그렇다면 원 장관의 요구대로 분양가를 내릴 수는 없는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물건이 팔리지 않을 때 싸게 팔아 재고 부담을 줄이고, 분양금의 일부를 받아 회사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도 주택업체들이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분석에 앞서 현재 분양가가 어떤 상황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월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3.3㎡ 기준)는 1753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아파트 분양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1500만 원을 넘어섰던 지난해(연평균 1522만 원)보다 15% 넘게 올랐습니다.
또다른 부동산정보업체 ‘리얼투데이’가 HUG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1월 3063만1000원으로 전월(2977만9000원) 대비 2.86%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4월(3224만 원) 이후 3000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가 9개월 만에 다시 회복한 것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양가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설원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리포트( ‘저렴한 분양가가 어려운 이유’)는 이를 잘 정리했습니다. 보고서에서 김 연구원은 “2020년 대비 2022년에 건축자재 35.8%, 임금 10.1%, 토지 7.0%가 각각 올랐고, 금리 상승에 따른 금융비용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떨어진 주변시세에 분양 가격을 맞추면 건설사들은 공사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이며, 저렴하게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선 분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은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국토부는 지난달 말 분양가상한제 대상 아파트에 적용할 기본형건축비를 철근·레미콘 같은 주요 건설 자재 가격과 노무비 변동을 반영해 2.05% 인상했습니다. 이에 앞선 2주 전에도 국토부는 레미콘 가격이 15% 넘게 올랐다며 1%가량 인상한 바 있습니다. 기본형건축비는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정기적으로 조정됩니다. 다만 자재가격이 일정 기준 이상 오르면 이를 반영해 인상 조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결코 흔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국토부가 2008년 3월 관련 제도(‘분양가상한제 적용주택의 기본형건축비 및 가산비용’)를 도입한 이후 자재가격 급등을 이유로 비정기 건축비 조정을 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불과 4번뿐입니다. 그 시점도 2008년(조정시기·7월)과 2021년(7월) 2022년(7월), 2023년(2월)입니다. 4번 가운데 3번이 모두 최근에 진행된 셈으로, 그만큼 자재가격이 많이 올랐음을 보여줍니다.
● 분양가 고공행진, 주택시장의 새로운 불안 요인
문제는 서울 등 인기지역에서 제동장치 없이 가격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재건축이 진행 중인 서울 은마아파트입니다. 현재 3.3㎡당 예상분양가가 7700만 원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앞서 서초구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는 5669만원으로 결정됐습니다. 5000만 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르엘 신반포 센트럴 분양가는 4849만 원, 서초 그랑자이와 방배 그랑자이는 4687만 원에 각각 책정됐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새 아파트 분양가의 고공행진이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회복했을 때 집값 불안을 유발하는 폭탄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해온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한 규제 완화 방침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예컨대 정부는 지난 1월 5일부터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에서 해제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고분양가를 가져왔고, 집값 불안을 유발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분양가의 평균 30~40%를 차지하는 땅값의 하향 안정은 정부의 분양가 인하 요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10년 10월 말 이후 계속 올랐던 땅값은 지난해 11월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2010년 10월 이후 12년 1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연간 땅값 상승률도 2.73%로 전년(4.17%)의 65% 수준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지난해 5% 넘게 오른 소비자물가(이하 ‘물가’)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하락한 셈입니다. 땅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밑돌은 것도 2013년 이후 9년 만의 일입니다.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 정부가 지원해달라는 주택업계와 분양가를 낮추라는 국토부의 힘겨루기는 어떤 식으로 막을 내릴까요.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하반기 이후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이 적잖은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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