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이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고 있다.
식품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직접 식품을 감싸는 1차 포장재인 연포장 인쇄에 쓰이는 잉크 사용량을 줄이는 등 친환경 패키지 적용 노력이 한창이다. 주로 과자 봉지나 비닐류 등 식품산업의 연포장 제품에 사용되는 잉크는 현재 유성 그라비아가 대부분이다. 이런 유기용제를 사용한 품목은 대기 중으로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돼 대기오염의 주범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46년간 친환경 산업용 잉크 개발에 전념해 온 국내 중소기업이 독일이나 일본업체가 장악해온 친환경 수성잉크 시장에 도전장을 내 화제다. 경기 안산에 있는 세창화학㈜(공동 대표 김세창·김동규)은 최근 식품 포장재에 사용되는 친환경 수성 연포장용 ‘플렉소 잉크(flexo ink)’를 독자 개발해 수입 잉크 대체에 나섰다.
친환경 수성 플렉소 잉크는 인쇄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포장재에도 잔류하지 않아 생산 현장 작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안전하다. 지금까지 유성 그라비아 잉크를 대체하기 위해 수성 플렉소 잉크가 소개되기는 했지만, 작은 글씨와 세밀한 선의 선명도, 전이성, 건조성, 가늠 정밀도, 고속 인쇄적성 등이 그라비아 방식보다 효능이 떨어졌다.
세창화학㈜의 연포장용 수성 플렉소 잉크는 특수한 분산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잉크로 색의 명도가 높고 전이성이 뛰어난 것이 특장점이다. 플렉소 인쇄는 수지 양각 제판에 물을 용매로 한 잉크를 전이시켜 인쇄하는 방식으로 잉크 및 유기용제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유해 유기 화합물 배출이 거의 없고 휘발성 잔류 용제 검출이 없어 화재 및 현장 작업에 안전하다.
‘친환경 녹색인쇄’라 불리는 플렉소로 인쇄 설비를 바꾸고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하는 식품회사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시장 전망도 밝다. 최근에는 식품 대기업인 오뚜기와 오리온도 친환경 수성잉크인 플렉소 인쇄 설비를 구축하고 잉크와 유기용제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등 친환경 포장재 생산을 강화하고 나섰다. 미주 및 유럽에서는 이미 플렉소 수성 잉크 사용량이 전체의 80%를 넘어섰다.
반세기 친환경 잉크 개발 ESG 경영 앞장
1977년 설립돼 반세기 가까이 각종 친환경 산업용 잉크 제품과 접착제 등을 생산해온 세창화학㈜은 미래 먹거리로 일찌감치 친환경 패키지에 주목했다.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액체 배합 및 분산 기술, 각종 인쇄 기계에 잉크 적성을 맞추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해왔다.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성 플렉소 인쇄 기계의 특성을 꾸준히 연구해온 끝에 수입 인쇄 기계에 가장 적합한 수성 플렉소 잉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세창화학㈜에서 개발한 연포장용 수성 플렉소 잉크의 특징은 색의 선명도와 농도감 및 재용해력이 우수하고 인쇄 시 날림 현상도 없다는 점이다. 잉크와 원단 간의 결합력과 접착력이 우수하고 솔리드 인쇄에 대한 유동성이 높아 뛰어난 재현력을 구사한다. 적용 시 인쇄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후가공 적성에도 우수하다. 인쇄 기계의 특성에 따라 물의 표면장력을 조절해 평활도 및 전이성을 높인 것도 강점이다. 수지의 이중결합과 공기 중의 산소 결합으로 건조 속도를 높이는 맞춤형 잉크 생산도 가능하다. 독일이나 일본의 플렉소 잉크와 비교할 때 저장성과 건조 속도, 생산성, 가격 경쟁력 등에서 모두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김세창 대표는 “그동안 수성잉크는 친환경성은 좋지만 기계 적성이 부족해 도입이 쉽지 않았다”라며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동규 공동 대표와 자체 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친환경 잉크 개발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왔고, 최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플렉소 잉크는 인체에 무해한 제품을 원하는 세계적 요구와 환경 관련 문제가 부각되면서 최근 식품 제조기업 사이에서 대세로 떠올랐다. 인쇄기와 잉크 주변 장비의 발전도 연포장용 플렉소 인쇄의 보편화를 이끌고 있다. 세창화학㈜에서 개발한 연포장용 수성 플렉소 잉크는 외국에서 도입된 윈드뮐러, 코멕시, 밥스트 등 인쇄 기계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물성을 갖고 있다.
세창화학㈜의 근간은 수성 잉크다. 46년간 수성 잉크를 만들며 쌓아온 노하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고품질 제품 생산을 위해 설비 자동화 및 시스템화에도 과감하게 투자했다. 2021년 12월에는 베트남 현지에 연포장용 그라비아 인쇄 잉크공장을 준공했다.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한 교두보다. 올해부터 베트남을 거점으로 미얀마와 태국 등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나갈 계획이다.
세창화학㈜은 그라비아·수성잉크 브랜드 ‘WI‘(에디나), 그리고 알코올류 잉크 브랜드 ‘SMAT’(스마트)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동남아 시장은 연포장보다 그라비아 인쇄 시장이 크다고 판단해 ‘SMAT’ 브랜드를 중심으로 마케팅에 나설 방침이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위험 줄인 소재도 개발
세창화학㈜은 최근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 이차전지의 안정성을 개선할 수 있는 준불연성 수성 난연 코팅 액상 소재도 개발했다.
리튬 이차전지는 뛰어난 효율에도 불구하고 폭발 위험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심한 충격을 받으면 과충전 방지를 위해 탑재된 작은 칩이 손상돼 화재의 원인이 된다. 충전 시에도 내부 전극에서 쇼트가 나거나 전지에 충격을 주면 폭발 위험이 있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액체 전해질이 사용되고 있는데 액체는 분리막 손상 시 양극을 만나게 해 단락을 일으켜 화재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액체 상태의 전해질 대신 불연성 고체 전해질을 사용한 배터리가 개발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세창화학㈜의 신제품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파우치나 플라스틱 상자에 코팅해 화재를 방지할 수 있는 준불연성 수성 난연 코팅 액상 소재다. 배터리를 감싸고 있는 파우치나 플라스틱 표면에 내수성 및 내후성이 우수한 접착수지와 내열 온도 1200도 이상에서도 일정 시간 견딜 수 있는 준불연성 액상 소재를 코팅해 화재 위험을 줄인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화재 시 유독성 가스를 흡수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소재를 사용했다. 액상화에 필요한 용매는 물을 단독으로 썼다. 수성 코팅 액상 소재는 배터리 플라스틱 포장재뿐만 아니라 자동차용 플라스틱 내장재에도 두루 적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소재 분야 제조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타개하고, 나아가 미래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업의 본질인 ‘기술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친환경 소재 시장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플렉소 잉크나 수성 난연 코팅 액상 소재 같은 선행 소재들의 개발과 보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친환경 잉크와 난연 코팅 소재가 내수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소재 제조사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친환경 제품이 널리 사용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제품을 사용하는 엔드유저(최종 사용자)와 공급자들의 성숙한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선행 제품이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지만, 결국은 미래의 성과로 보답 될 것”이라며 “특히 식품업계에서 국산화 수성 잉크 제품에 실질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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