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보증금을 반영하면 지난해 한국의 가계부채가 3000조 원에 육박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6일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포함 가계부채는 2925조3000억 원으로 5년 전인 2017년보다 703조8000억 원(31.7%) 늘었다. 한경연은 특히 2020~2021년 사이 ‘임대차 3법’ 시행과 집값 급등으로 전세보증금이 올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생계비 등 대출이 증가한 탓에 가계부채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비교가 가능한 2021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전세보증금 포함 156.8%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증금을 제외했을 때는 105.8%로 4위지만 전세보증금까지 부채에 반영할 경우 2위 스위스(131.6%)를 제치고 1위다. 한경연은 “전세와 반전세는 한국만의 특수한 제도”라며 “국제통계에서는 이를 사적 부채에 포함하지 않아 이번 조사에선 전세, 반전세 보증금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 이상인 곳은 한국을 포함 스위스 호주 캐나다 덴마크 네덜란드까지 6개국이었다. 영국(86.9%·10위), 미국(76.9%·11위), 일본(67.8%·12위), 프랑스(66.8%·15위), 독일(56.8%·19위) 등은 모두 100% 아래였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가장 높았다. 2021년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6.5%로 6위지만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면 303.7%로 뛰어 1위가 된다. 세금 등을 제외하고 개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연간 소득보다 빚이 3배 이상 많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영국은 148.4%, 프랑스 124.3%, 일본 115.4%, 독일 101.5%, 미국 101.5%로 선진국 대부분이 100~150% 사이다.
한경연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아진 것도 가계부채의 부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변동금리 비중은 잔액 기준으로 2017년 말 66.8%에서 지난해 말 76.4%로 올랐다. 신규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같은 기간 64.3%에서 75.3%로 11.0%포인트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높은 주택 보유 성향을 이런 현상의 주된 이유로 꼽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큰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보유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 때문에 높은 측면이 있다”며 “담보가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부채의 질은 좋은 편이지만 고금리 상황에서는 과도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줄이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요즘처럼 전셋값이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시기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추가로 대출을 끌어와 메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제도권 대출이 많다는 뜻인데 이렇게 부채를 돌려막다 보면 개인의 부도 문제로 이어지고 국가 경제에는 리스크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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