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에서도 분양시장의 ‘초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분양가 2억원을 낮춰도 미분양이 지속되는가 하면, 규제 완화 후 첫 분양 단지에서는 20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10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민간 미분양 주택은 총 996가구로 지난해 12월 994가구에 이어 두 달 연속 1000가구에 육박했다. 사업 주체가 비공개한 ‘숨은 미분양’을 고려하면 실제 서울 시내 미분양 주택은 이미 1000가구를 훨씬 웃돌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로는 마포구가 271가구로 가장 많고, 강북구가 201가구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2월 첫 분양에 나선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261가구)는 7차례 무순위 청약에 분양가를 2억원 낮춘 15% 할인 분양까지 단행했지만, 절반이 넘는 136가구가 여전히 미분양이다.
이마저도 한국주택도시공사(LH)가 예산 낭비 논란을 감수하면서 전용 19~24㎡ 36가구를 2억1000만~2억6000만원에 매입한 결과다.
전월보다 미분양 가구가 가장 많이 늘어난 마포구는 노고산동에 위치한 ‘빌리브 디 에이블’이 총 256가구 중 244가구가 미분양으로 집계됐다. 전용 38~49㎡ 소형주택 위주로 분양가는 8억~13억원대다.
지난해 8월 일반분양한 서울 구로구 ‘천왕역 모아엘가’도 기존에는 중도금 40%까지 무이자 대출에, 계약 시 한달 내 현금 3000만원 지원 조건까지 걸며 ‘출혈’ 마케팅에 나섰지만 140가구 중 128가구가 미계약 상태다.
반면 영등포구 양평동 영등포자이 디그니티 아파트 청약에는 2만명 가까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만 200대1을 기록했다. 양평12구역 자리에 들어서는 영등포자이 디그니티는 지하 2층~지상 최고 35층, 4개동, 전용면적 59~84㎡ 707가구로 구성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의 야심작인 ‘반값아파트’ 고덕강일3단지 500가구 사전 예약에도 1만9966명이 접수하며 최고 경쟁률 118.3대 1을 기록했다.
서울 내에서도 분양시장의 초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분양가’의 적정성으로 꼽힌다. 영등포자이 디그니티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3411만원으로 전용 59㎡는 8억5000만원대, 전용 84㎡는 11억5000만원대다. 인근 아파드 같은 평수보다 1억원가량 저렴한 금액대다.
고덕강일3단지 토지임대부도 ‘반값아파트’로 불리는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500가구 모두 전용면적 59㎡(25평)으로, 분양가는 약 3억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인근 상일동 아파트 25평 매매가가 10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이 높다.
일각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의 평당 분양가 3829만원이 기준점으로, 향후 민간 분양 주택에서는 이보다 비싼 가격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일 진행한 둔촌주공 재건축 올림픽파크 포레온 무순위 청약에도 4만명 넘게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46.2대 1로, 전용 29·39·49㎡ 중 49㎡ 접수 인원이 2만7398명으로 가장 많이 몰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둔촌주공 계약률을 보면 여전히 시장에 수요가 존재한다”며 “다만 기준금리 유인들 때문에 정체가 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충분히 상품성이 있는 곳은 수요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 수요자들이 가격 적정성뿐만 아니라 입지 조건, 브랜드 단지 등 깐깐한 기준으로 ‘옥석 가리기’에 나서며 서울 내 초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특히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소규모 아파트, 빌라, 주거용 오피스텔 등에는 더 깐깐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영등포자이와 같은 날 1순위 청약을 진행한 서울 강서구 비브랜드 단지인 ‘등촌 지와인’의 경우 81가구 모집에 104명 신청, 1.28대 1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특별공급에도 71가구 모집에 68명만 접수해 0.96대 1에 그쳤다.
‘등촌 지와인’의 경우 분양가는 영등포자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단지 규모가 136세대에 그치고, 브랜드 인지도도 밀린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시장이 혼조세를 보이며 수요자들이 가격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며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여러 조건을 깐깐히 따져보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서울 내에서도 분양가의 적정성, 입지 조건, 전용 면적, 건설사 브랜드 등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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