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중시 분위기 속 ‘존중의 문화’ 관심 ↑
직급 및 호칭 파괴보다 자기다움 발현할 기회 줘야
20세기는 평균의 시대였다.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만든 ‘평균적 인간’이란 개념을 엔지니어 출신 프레더릭 테일러가 산업계에 받아들이면서 촉발된 ‘평균주의’와 ‘표준화를 통한 효율 추구’는 이후 한 세기 넘게 경영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평균주의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조직 역동의 문제를 선형적으로 단순화했다는 한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혁신을 추구하면서 누려야 할 자유재량이 박탈당하기 일쑤였고 효율적 관리를 위한 위계 구조는 혁신의 여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직원들의 의욕을 꺾어 놓고 말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는 사회 전반에 디지털화를 몰고 왔고 이는 개별화 풍토와 다양성 증대를 태동시켰다. 그 결과, 많은 기업이 수평적 조직문화, 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조직문화 혁신을 꾀하고 있다.
● 집단지성을 만드는 비법 ‘존중’
기업이 직원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도는 사실 커다란 도전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특성을 일터에서 인정하겠다는 것은 관리 및 통제의 어려움과 비효율을 감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극대화되고 시장에서의 경쟁이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현 상황에서 기업은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직원들이 필요해졌다. 현장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고 최적의 대응책을 구사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서로 연결하는 역량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공유’다. 혁신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로머에 따르면 혁신은 아이디어의 상호 연결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물인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집단지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디어가 상호 연결되고 교류되도록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존중’이 내재화된 문화다.
● 존중의 실체는 결국 ‘자기다움’
존중의 사전적 의미는 ‘높여서 귀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직급을 막론하고 호칭에 ‘님’을 붙여 부르고 모든 구성원과 존댓말을 유지하는 등의 소통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노력이 존중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존중의 문화를 조직 내에 내재화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존중이 내재화된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존중이라는 의미의 영어 ‘Respect’는 라틴어 ‘Respectus’에서 연유한다. ‘Re’는 ‘되돌아’ ‘반복해서’의 의미가 있고, 어원인 ‘Specere’는‘본다’는 뜻이다. 결국 존중이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본질적으로 성찰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직원을 존중하려면 직원 하나하나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본질적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로라 로버츠 미시간대 교수는 ‘최고의 자기 모습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료들이 최고의 내 모습을 알아줄수록 사람들은 직장에서 나의 본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느낀다. 다시 말해, 최고의 자기 모습을 동료들에게 드러내고 업무에서도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 때 존중받는 느낌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직 내에서 최고의 자기 모습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직원들 개개인의 ‘자기다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기다움은 크게 흥미, 강점, 지향점으로 구성된다. 나의 호기심 영역에서 일의 단초를 찾고, 잘하는 것을 통해 성과를 내며, 소중히 가꾸고 있는 가치와 신념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으로 연결됐을 때 직원은 업무에 몰입할 수 있고 일터에서도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다.
● 최고의 자기다움 연결
그렇다면 최고의 자기다움이 발현된 일터의 모습은 어떨까. 미국의 토마토 가공 기업 ‘모닝스타’가 좋은 사례다. 1970년 크리스 루퍼가 설립한 모닝스타는 트럭 한 대로 토마토를 운반하는 작은 회사로 출발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주 우들랜드에 본사를 두고 200대가 넘는 트럭과 수천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연간 소비되는 토마토 제품의 40%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토마토가공 회사로 도약했다.
모닝스타는 제조업체인데도 효율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한 명도 없다. 당연히 위계 서열 또한 전무하다. 모든 것이 ‘구성원 개인의 자율 관리’라는 경영 철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모닝스타는 직원 개개인의 자기다움에 따라 자율과 책임이 최적화된 ‘개인별 임무 기술서’를 두고 그 일을 수행하는 주체인 직원이 동료 및 일 자체와 어떻게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각 직원은 자신의 임무 기술서를 작성해 회사의 전반적 임무에 어떻게 기여할 계획인지 설명하고 포부와 목표도 밝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직원의 목표와 활동에 영향을 받을 만한 모든 직원이 임무 기술서에 서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동료 모두의 승인이 있어야 비로소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 직원들은 상사가 아닌, 자신을 믿어 준 관련 동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책임감을 느끼며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회사가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진정성 있게 초점을 맞추고 자기다움이 일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서 관련 지원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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