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위기 여파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2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밟았다. 지난해 3월 이후 9회 연속 인상으로 미 금리는 4.50∼4.75%에서 4.75∼5.0%로 뛰어 상단 기준 5%대에 들어섰다. 한국 금리와의 격차는 2000년 이후 22년여 만에 가장 큰 1.5%포인트가 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금리 동결도 고려했지만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인상 배경을 밝혔다.
파월 의장은 2주 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올해) 최종 금리 전망치를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FOMC가 이날 공개한 점도표의 올해 말 금리 전망 중간값은 5.1%(5.0∼5.25%)다. 지난해 12월 전망치를 유지한 것이다. 은행 위기 속에 신용 경색을 우려해 사실상 금리 인상 종결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파월 의장은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 밝혀 ‘피벗(정책 전환)’ 낙관론은 경계했다.
연준의 속도 조절로 한국은행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연준이 5월 FOMC에서 다시 베이비스텝을 밟으면 한미 금리 차는 1.75%까지 벌어져 통화정책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연준의 긴축 막바지 기대감에 전 거래일(1307.7원)보다 29.4원 급락한 1278.3원에 마감했다.
파월 “올해 금리인하 없다”… 韓美격차 1.75%P까지 벌어질 수도
美 5% 기준금리에 韓銀 딜레마
파월 “올릴 필요 있으면 더 올릴것” 시장선 “금리인상 막바지”… 환율↓ 韓銀 내달 금리 한번 더 동결 관측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긴축 속도를 늦추면서도 기준금리 추가 인상 여지를 열어 뒀다. 우려됐던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은 피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다만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불씨가 살아 있는 데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22년 만에 최대치인 1.5%포인트로 벌어졌다는 점은 부담이다. 금리 차를 좁히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침체 비상 신호들을 모른 체할 수 없고, 손 놓고 사상 최대 금리 역전 상태를 지켜볼 수도 없는 ‘고차 방정식’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 美 긴축 속도 조절, 시장에선 “금리 인상 막바지”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융 안정 사이에서 고심하던 연준은 물가는 잡되 앞으로 은행 위기 진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선택했다. 수그러들지 않는 인플레이션, 중소형 은행 위기 등 경제 불안이 확산되고 있어 좀 더 지켜보겠다는 시그널은 이날 공개된 점도표에도 반영됐다.
향후 금리 인상 경로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각자 점을 찍어 보여 주는 점도표에서 올해 말 최종금리 전망 중간값은 지난해 12월과 같은 5.1%(5.0∼5.25%)로 나타났다. 매번 금리를 올릴 때마다 성명서에 넣은 ‘지속적인 금리 인상(ongoing increase)’ 문구 대신 처음으로 ‘추가적인 정책 강화(additional policy firming)’라는 말을 써서 향후 정책 경로를 모호하게 표현했다. 현재 기준금리(4.75∼5%)에서 한 차례 정도 베이비스텝만 남아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은행 위기를 고려해 금리 전망치를 높이지 않았다”면서도 “올해 금리 인하는 보고 있지 않다. 더 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파월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23일 0시 기준 5월 금리 동결 가능성을 60.3%, 7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76.4%로 내다봤다. 은행 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과 경기침체 우려 속에 연준이 피벗(정책 전환)을 앞당길 것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 ‘고차 방정식’ 떠안은 한은
이로써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한은은 다소 시간을 벌게 됐다. 당장 시장에선 한은이 다음 달 11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한 번 더 동결하고 물가나 경기 상황을 지켜볼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역대 최대 적자폭(―45억2000만 달러)을 기록한 1월 경상수지와 부동산 경기 침체, 가계부채 부담 등도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게다가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4.8%)이 10개월 만에 4%대로 내려오면서 물가 상승 압박도 조금은 덜었다.
다만 갈수록 벌어지는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는 부담이다. 연준이 5월 추가 베이비스텝을 밟게 되면 금리 차가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코스닥 시장에서 외국인이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10일 이후 20일까지 1조3000억 원가량의 주식을 순매도하는 등 이미 투자자금 이탈이 두드러지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이 금리를 올렸던 유일한 이유는 환율”이라며 “국내 사정을 따지면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환율이 최대 변수”라고 전했다.
23일에는 역대 최대 한미 금리 차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락(원화 가치 급등)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9.4원 하락한 1278.3원에 마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시장의 기대심리가 반영돼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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