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율-가동률 등 세부정보 내야”
경쟁사 유출땐 수주전서 치명타
31일 신청 시작 앞두고 업계 고심
“심사과정서 협상 통해 조정할것”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자국 유치 카드로 내건 보조금의 조건으로 기업들의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31일부터 보조금 신청이 시작될 예정이지만 과도한 미 정부의 요구에 기업들이 신청을 유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 상무부는 27일(현지 시간)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에 대한 세부 지침과 사례를 공개하며 수익성 지표에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과 수율 전망 등을 포함시키도록 요구했다. 수율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핵심 지표여서 기업들은 특정 시설의 수율을 기밀로 유지하고 있다.
상무부는 “세부적인 재정 투입은 프로젝트의 재정 강도를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데 핵심적”이라며 “(수익 지표에) 세부 항목별 생산 전망과 연도별 변화에 대한 명시적인 세부 사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수익성 지표에 분기별 반도체 공장에서 제조할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수율 및 판매 단가, 수익 전망 등을 모두 포함시킬 것을 명시했다. 비용 지표에도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소재, 소모품, 화학제품 등은 물론이고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공공요금,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포함시킨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소재·부품 비용의 경우 실리콘 웨이퍼, 질소 등 소재별로 비용을 별도로 산출하고 인건비 역시 엔지니어와 기술자, 관리자 등 직원 유형별 직원 수를 공개하도록 했다.
사실상 반도체 공장 운영을 위한 세부 정보를 모두 제출하라고 한 셈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핵심 기밀로 유지하고 있는 수율까지도 공개 범위에 포함시키면서 기밀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기업들로서는 핵심 정보인 각 웨이퍼의 수율 및 가동률이 경쟁사에 공개되면 수주전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소재와 소모품, 화학제품의 종류와 비용 등도 협력사와의 계약에 포함된 사항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가 초과이익 산정에 더해 연간 생산량 전망까지 요구하면서 사실상 기업의 중장기 경영 전략을 통째로 내놓으라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미 정부에 이러한 민감 정보가 제공될 경우 해당 내용이 현지 경쟁 업계에 유출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미 상무부는 다만 “해당 문서는 지침을 제공하는 것일 뿐 신청 기업은 이런 제안을 따를 의무가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상무부는 2021년 자동차 반도체 대란 당시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에 반도체 재고와 고객사 정보 등 26개 항목의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다. 당시 반도체 기업들은 민감한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세부 지침은 업무 협조 요청 성격이 강했던 2년 전과 달리 수억 달러의 보조금이 걸린 만큼 상무부 지침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상무부는 세부 지침에서 “세부 정보가 부족한 신청서에는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보조금 지급) 검토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업계는 “상세 요건을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미국 정부가 초안으로 내놓은 세부 내용인 만큼 향후 신청 과정에서의 협상을 통해 제출 내용을 조정해 나갈 것이란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기준으로 요구된 정보들이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건 확실하다. 이제 본격적인 보조금 신청 절차가 시작되니 향후 신청 및 심사 과정에서 기업들마다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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