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립 300주년을 맞은 저희 벨베데레 미술관에서는 2월 발렌타인데이에 특별한 사랑 고백 행사를 열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그림 앞에서 연인들이 키스하도록 한 뒤 그 모습을 촬영해 준 거죠. 연인들의 긴 줄이 늘어섰는데, ‘키스’의 NFT(대체불가토큰) 소장자는 줄을 서지 않도록 ‘특혜’를 드렸습니다.” (볼프강 베르그만 벨베데레 미술관 경영 디렉터)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최근 주한 오스트리아대사관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시대의 사랑 고백 방법을 들었습니다. 저는 6년 전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에 가 본 적이 있는데요. ‘키스’ 작품 앞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전시실 밖의 ‘가짜’ 키스 그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벨베데레 미술관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볼프강 베르그만 벨베데레 미술관 경영 디렉터는 벨베데레 미술관의 NFT 프로젝트를 설명했습니다. 이 미술관은 NFT 스타트업 아르테큐와 손잡고 지난해 클림트의 ‘키스’를 NFT 작품으로 선보였습니다. 고해상도 디지털 사본을 가로 100개 세로 100개 총 1만 개의 복제 불가능한 NFT 조각들로 만들어 한 조각당 1850유로(약 260만 원)에 판매하는데, 지금까지 2600여 개가 팔렸다고 하네요. 벨베데레 미술관의 선례를 따라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미술관도 에곤 쉴레의 그림을 NFT 작품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키스’ 작품을 1만 개로 분할한 ‘키스’ NFT 작품은 오리지널 ‘키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소장하는 조각에 따라 점이 찍힌 금색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붉은색 꽃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질문. 벨베데레 미술관은 이 NFT를 대체 왜 파는 것일까요. 비영리기관이라 수익금은 전부 ‘제2의 클림트’를 발굴하는 미술교육에 재투자하는데 말이죠.
벨베데레 미술관 측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수적인 장소였던 미술관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고객과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디지털 흐름의 선두에 있는 문화기관으로서, 메타버스로 첫걸음을 내딘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전 세계 아트 컬렉터들이 보여준 폭넓은 관심은 우리가 적절한 시기에 NFT에 집중하기로 한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이 ‘키스’ NFT 프로젝트를 통해 두 종류의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NFT 작품을 수집한 적이 없던 예술 애호가들, 이미 NFT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웹 3.0 네이티브들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이 NFT 작품을 구매한 2600여 명 중 1800여 명은 오스트리아가 아닌 해외 구매자로, 국제적 커뮤니티가 생겨난 게 수확이라는 설명입니다.
영국 트렌드정보회사 스타일러스의 안원경 한국대표는 “국립박물관 소장품이라 대중이 현실적으로 가질 수 없는 클림트의 ‘키스’를 NFT 형태로 소유하면서 소비자는 예술적 위안을 얻고, 미술관은 혁신적 방법으로 젊은층에게 다가가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투기로서의 NFT 거품을 걷어내고 NFT의 본질적 가치를 생각하며 접근할 때인 것 같다”고 합니다.
벨베데레 미술관의 변신 노력은 NFT에 그치지 않습니다. 2년 전부터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클림트의 ‘키스’ 등 17점을 삼성전자 ‘더 프레임’ TV의 전용 작품 구독 서비스 앱인 ‘아트 스토어’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TV를 시청하지 않을 때 미술작품을 스크린에 띄워 나만의 ‘홈 갤러리’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죠. 이 미술관은 최근에는 국내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협업해 19일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접목한 패션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NFT 얘기로 돌아오면, 잘 아시다시피 NFT 시장은 FTX 거래소 파산, 테라·루나 사태 등으로 가상화폐 가치가 폭락해 최근 2년 새 규모가 쪼그라들고 분위기가 위축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NFT 기술과 코인은 다릅니다. 오히려 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NFT가 가치를 찾아가는 분위기가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미술품, 음악저작권 등 유무형 자산을 조각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토큰 증권’을 허용하는 방침을 밝히면서 NFT가 토큰 증권 형태로 발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최근 외신을 보면서 ‘NFT 립스틱 효과’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접했습니다. 본래 ‘립스틱 효과’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 미국에서 나온 말로, 소비 경기가 안 좋을 때 립스틱 같은 비교적 값싼 화장품으로 ‘작은 사치’를 누린다는 뜻의 경영학 용어입니다. 비싼 새 옷을 구입하기엔 부담스러워 화장품으로 기분 전환을 한다는 거죠. 이 용어를 활용한 ‘NFT 립스틱 효과’는 값비싼 예술작품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NFT 작품을 통해 예술적 만족을 누린다는 겁니다. 2020년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도 1930년대 대공황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았으니까요.
NFT 작품을 통한 미술관의 변신 노력은 오스트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현대미술관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세계 각국의 작가 13명의 NFT 작품 18점을 소장해 올해 봄에 전시한다고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1977년 개관해 연간 5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이 미술관이 자체 컬렉션 NFT를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퐁피두센터의 이번 행보를 통해 NFT가 단순히 디지털 수집품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퐁피두센터 측은 “창의력이 예술계 밖에서 또는 디지털 예술의 전문 영역에서 시작돼 현대 미술계에 서서히 메아리치는지 보는 것은 흥미롭다”며 “NFT가 개념미술 및 미니멀리즘 예술의 컬렉션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NFT 아트’는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일부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확실한 것은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변화와 혁신을 위해 NFT에 열린 자세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빠르고 다양하게 결합되고 있는 요즘, NFT 아트에 대한 건강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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