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문현동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63층짜리 이 건물의 맨 꼭대기층은 외국계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한 곳으로 모두 10곳의 사무공간이 조성돼 있다. 그러나 30일 찾아간 이곳엔 3개사만 입주해 있을 뿐 나머지는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건물의 다른 층도 자산관리공사, 예탁결제원 등 서울에서 이전한 금융 공기업들이 자리를 채웠다. ‘국제금융센터’라는 빌딩 이름이 무색할 지경인 것이다.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지 14년이 지난 부산은 올 3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37위로 집계돼 지난해 9월(29위)보다 8계단이나 하락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며 ‘동북아 금융 허브’ 출사표를 낸 지 20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아직도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 걸맞은 법·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데다, 오히려 갖가지 규제로 금융산업에 족쇄를 채워놓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이 금융허브 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으로는 우선 사실상 ‘무늬만 금융 중심지’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금융사에 돌아가는 혜택이 거의 없다는 점이 꼽힌다. 가령 싱가포르와 달리 서울 여의도에 입주하는 금융사들은 법률상 ‘금융 중심지’에 해당함에도 각종 세금을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 금융 중심지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법인세 면제나 감면 혜택을 받지만, 여의도는 수도권 과밀억제구역으로 분류돼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법 개정을 추진해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계획이지만,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 알 수도 없다. 법인세율도 최고 세율이 24%로 싱가포르(17%), 홍콩(16.5%)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육성하는 금융 중심지가 서울과 부산 등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09년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지구가 금융 중심지로 지정된 이후 2015년 국민연금공단이 전북 혁신도시에 자리잡으면서 전북에도 제3의 금융 중심지를 조성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불붙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공약집에서 ‘전북 금융 중심지 지정’을 명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계획이 한정된 자원과 행정력을 분산시킬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다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울조차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등 집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금융 중심지 지정을 지역 간 나눠 가지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