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원전 방폐물 관리 안전… 고준위 저장시설 설치 시급”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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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원전 저장시설 가보니
7.0규모 지진 견디게 안전 설계, 50m 높이 원통 가득차면 밀봉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가득 차… 설치기간 수십년 걸려 대비 시급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내 방사성폐기물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월성 원전 내 저장시설은 현재 75.5%가 채워져 있어 2037년이면 포화가 예상된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내 방사성폐기물 건식저장시설 ‘맥스터’. 월성 원전 내 저장시설은 현재 75.5%가 채워져 있어 2037년이면 포화가 예상된다.
“빛(전기)에는 빚이 따릅니다. 지금 제 발밑에 저장된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이 ‘빚’인 셈입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자력본부. 이곳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 옥상에 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하면 사용후핵연료, 즉 방폐물이 발생한다. 원전에서 나온 방폐물은 짧게는 수백 년에서 수만 년까지 독성 방사능을 내뿜는다.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농도가 높은) 방폐물은 현재 원전 부지 내에 저장되고 있다. 맥스터는 방폐물을 저장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내부 1cm 두께 금속 실린더로 방폐물을 1차로 감싼 뒤 외부 1m 두께 콘크리트 벽이 한 번 더 유출을 막는다. 진도 6.5∼7.0 규모 지진에도 견딜 수 있고 항공기 충돌 실험에서도 온전할 정도로 안전성을 입증했다.

이날 기자가 방사선 측정기를 들고 맥스터 인근에 1시간가량 머물며 수시로 수치를 확인하니 기계는 줄곧 0.00mSv(밀리시버트)를 가리켰다. 최소 측정 단위인 0.01mSv보다 낮은 수준이어서 0.00으로 표시됐다. 흉부 엑스레이를 1회 촬영할 때 피폭되는 방사선량이 0.2mSv 정도다.

현행법상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은 모두 원전 내부에 보관하게 돼 있다. 병원이나 산업체 등에서 나오는 중·저준위 방폐물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이 운영하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이날 경주시 봉길리 소재 처분장 내부에 들어가니 50m 높이 원통형 사일로(silo) 안에 방폐물이 담긴 콘크리트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곳의 중·저준위 방폐물은 압축 처리를 거친 뒤 특수 제작된 용기에 담겨 콘크리트 상자 안에 밀봉된다.

이날 만난 원전 관계자들은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도 중·저준위 방폐물처럼 원전 부지 외부 영구처분시설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방폐물이 제한된 부지 내에 임시 보관된 셈인 데다, 저장시설 상당수가 조만간 포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원전 내 고준위 방폐물 보관 용량은 한빛 원전(지난해 기준 저장률 77.9%)을 시작으로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된다. 저장 공간이 포화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고준위 방폐물을 수백 년간 보관할 영구처분시설을 설치하는 데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 건설이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원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영구 처분 이전에 중간 저장을 할 수 있는 시설부터 지어야 한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 저장을 규정한 특별법 3개 안이 여야에서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후대에 원전 사용에 대한 빚을 남기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방폐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성원전#저장시설#원전#방폐물#방사성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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