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4일(현지 시간)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금융시장 불안을 경고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으로 위기는 일단락됐지만 금리 인상과 부동산 가격 하락 속에 채무불이행 사태가 재발할 우려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IMF는 이날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이 촉발한 글로벌 은행위기가 “수년간의 저금리,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해 확대된 금융 부문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같은 위험은 통화 긴축이 지속되는 한 향후 몇 달 동안 더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특히 비(非)은행 금융사의 위험을 거론하면서 지난해 10월 한국이 겪었던 레고랜드발 회사채 시장 위기를 서술했다. IMF는 “한국의 경우 PF 대출은 자금 구조가 취약하고 만기 불일치도 상당하다”며 “한국 PF 대출 연체율이 정점에서 더 오를 가능성은 낮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역풍이 계속되고 있어 위험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IMF는 이어 “당국은 부동산 금융과 관련된 잠재적인 채무불이행 우려를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금융 당국도 국내 제2금융권의 PF 관련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고 최근 수년간 대규모 PF 대출에 나섰던 증권사나 저축은행, 상호금융권 등에서 최근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동산 PF에 대한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범정부적 차원에서 금융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부동산PF 연체율 2배로… 제2금융 위험노출액 115조
PF연체→금융사 부실→채권 경색 부동산 경기침체 악영향 확산 우려 “수익만 좇다가 나라 전체 리스크” 금융사 유동성-신뢰도 점검 필요
지난달 30일 찾은 부산 사하구 ‘다대 마린시티 사업’ 현장. 곳곳에 트럭과 테트라포드 등 공사 장비가 어지럽게 방치돼 있었다. 부산 서쪽 끝에 자리 잡은 18만 ㎡의 옛 한진중공업 부지에 3000여 가구의 주거 단지와 관광·문화 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이 미니 신도시급 사업은 사실상 진행이 중지된 상태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워낙 노후된 지역이라 공사를 시작하면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자금 문제 때문에 사업 진행이 밀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중소 증권사와 상호금융권이 3700억 원의 자금을 모아 부지를 매입한 이후 한 발짝도 진척이 안 되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가 급증한 가운데 사업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착공도 못 하는 상황. 투자에 참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존 대출 만기를 두 달 정도 겨우 연장했다”며 “추가 자금을 모으지 못하면 부지를 매각하고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115조 부동산 PF… 제2금융권에 집중
다대 마린시티 같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은 최근 한국 금융권의 대표적인 뇌관으로 꼽힌다. 금리 인상 속에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면서 ‘PF 연체율 상승→중소 금융회사 파산→채권시장 경색→기업 자금난 심화’ 등의 경로를 거쳐 실물경기 및 금융시장에 연쇄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특히 제2금융권에서 위험도가 높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서 지난해 9월 말 기준 보험 증권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금융사의 부동산 PF 익스포저(대출 보증 등 위험노출액) 규모를 115조5000억 원으로 집계했다. 2017년 말 대비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동산·건설업 대출 규모도 여신전문금융사가 4.2배, 저축은행 3.4배, 상호금융(새마을금고 제외) 3.1배, 보험 1.7배로 각각 급증했다.
PF 대출 연체율도 치솟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2021년 말 3.7%였던 연체율이 지난해 9월 말 8.2%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저축은행 연체율도 같은 기간 1.2%에서 2.4%로 높아졌다. 한 증권사 PF 담당 임원은 “부동산 가격 하락과 금리 상승으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가로 PF의 매출액은 줄고 비용만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라는 특정 영역의 문제가 전체 금융권의 리스크로 부각되는 상황이 한국 금융의 취약한 위기관리 수준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PF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위험도가 급격히 높아지는데도 수익만을 좇아 대다수 금융사가 뛰어든 것”이라며 “이들이 관리하지 못한 리스크를 결국 나라 전체가 나눠 지고 있다”고 말했다.
● 변동금리 속 대출 부실 리스크 커져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계기로 국내 금융사의 고질적인 취약점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의 자산 규모가 아무리 커도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이나 신뢰도 저하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변동금리 중심의 대출 구조 속에 취약한 자영업자·중소기업 대출은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국내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014조2000억 원에 이른다. 1년 전보다 14.3% 증가한 수치다. 한국은행은 올해 0.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을 전제로 취약 자영업 대출자의 부실위험률이 16.8%까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소기업 대출 역시 약한 고리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국내 4대 은행의 중소법인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말 0.29%에서 2월 말 0.45%로 급격히 높아졌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금리와 물가 상승, 경기 둔화에 따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 부분이 국내 금융사의 주요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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