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2차 전지’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영향으로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투자자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그런데 전기차용 배터리 세계 1위 기업이 어디인지 아시지요? 바로 중국 CATL(중국명 寧德時代, 닝더스다이)입니다. 물론 중국 시장을 빼고 계산하면 여전히 LG에너지솔루션이 1위이지만,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데요. CATL은 IRA 법이라는 장벽에도 포드(Ford)와 테슬라(Tesla)가 기어이 손 잡으려하는 배터리 기업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신경 쓰이는 중국 기업, CATL의 전략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지난 2월 미국 포드가 CATL과 손잡고 35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까지 만들면서 배제하려고 했던 중국 기업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다들(특히 미국 정치권과 한국 배터리 업계가) 깜짝 놀랐는데요. 지분을 나눠 갖는 합작사 형태가 아닌, CATL이 기술만 제공하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규제를 피했습니다(지분은 100% 포드가 소유). ‘중국 배터리가 IRA 우회로를 찾았다’는 말이 나왔죠.
3월 말엔 블룸버그 통신이 테슬라가 CATL과 미국 공장 건설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포드와 같은 방식이 될 거라는데요. 기술제휴란 꼼수를 통한 CATL의 미국 상륙 길이 뚫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전기차용 배터리 좀 아시는 분은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겁니다. 중국 배터리? 그거 에너지 밀도 낮고 주행거리 짧은 싸구려 아니야? 왜 미국 기업들이 그걸 못 써서 안달이지?
네, 맞는 얘기입니다. CATL를 포함한 중국 기업의 주력 제품은 리튬인산철(LFP)배터리.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값이 싼 인산철을 씁니다. 한국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니켈∙코발트∙망간 등 비싼 소재를 양극재에 씀)보다 저렴하죠. 대신 LFP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약 20% 떨어집니다. 같은 부피∙무게 배터리라면 담을 수 있는 에너지 용량이 적다는 뜻입니다. 한번 충전했을 때 차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그만큼 짧은 겁니다.
그래서 몇 년 전만해도 LFP배터리는 값싼 중국 전기차에서나 쓰는 걸로 알았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건 테슬라 때문입니다. 2021년 테슬라가 미국 판매용 모델3에 CATL 배터리를 쓰기 시작한 거죠. 이젠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BMW 같은 유럽차도 보급형 모델엔 CATL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연히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겠죠. 짐 팔리 포드 CEO는 2월 기자회견 당시 “LFP배터리 생산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기차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LFP는 가장 저렴한 배터리 기술”이라고 CATL과 손잡은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닙니다. LFP배터리의 최대 단점(낮은 에너지 밀도)을 극복한 CATL의 기술력도 작용했다고 봐야 하는데요. 바로 셀투팩(CTP, Cell to Pack) 기술입니다.
1회 충전에 1000㎞ 간다?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소재를 쓰거나, 차에 배터리를 엄청 많이 넣는 거죠. CATL은 두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최대한 빽빽하게 배터리 셀을 채워 넣기로 한 거죠.
그래서 2019년 CATL이 선보인 게 셀투팩(CTP) 기술입니다. 개념은 아주 간단합니다. 원래 배터리 셀을 모아서 ‘모듈’을 만들고 다시 모듈을 여러 개 합쳐서 배터리 ‘팩’으로 만들어서 전기차에 장착했는데요. CTP는 그 모듈을 없애버린 겁니다. 그냥 셀을 모아 바로 팩을 만들죠. 모듈이 차지하던 공간을 셀로 채우니까 이전보다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게 되는데요.
지갑(모듈)과 가방(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5만원짜리 지폐(셀)를 여러 개 지갑에 나눠 가득 담은 뒤 가방에 넣는 것과 지갑 없이 바로 가방에 가득 담는 것. 어느 게 더 많은 돈이 들어갈지는 뻔하겠죠?
한마디로 소재의 한계(에너지 밀도 낮음)를 구조(빽빽하게 많이 넣음)로 극복하는 전략입니다. CATL은 이 기술을 계속 업그레이드 시켜 지난해 ‘기린배터리’라는 이름의 신제품을 발표했는데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000㎞라고 홍보합니다(주행거리 기준이 달라서 한국 기준으로는 더 짧아짐).
모듈 없애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소재 특성상 삼원계 배터리는 안정성이 좀 낮아서(화재 위험) 모듈을 없애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CTP가 LFP배터리에만 적용되는 이유이죠. 참고로 LG에너지솔루션도 CTP기술을 2025년에 적용한다는 계획이긴 합니다. 삼원계 배터리에 적용하는데는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우린 자동차 안 만들어”
“우리는 자동차 만드는 방법을 모릅니다.” 지난달 투자 설명회에서 쩡위친 CATL 회장이 한 말입니다. CATL이 완성차 제작에 뛰어들 거란 시장의 관측을 부인하는 발언이었는데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CATL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 이익률은 17%에 달하는데요. 반대로 전기차 제조사들은 일부 선두업체를 제외하고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죠. 중국에선 오죽하면 ‘자동차 회사가 CATL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CATL로서는 굳이 레드오션인 완성차 분야에 뛰어들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자동차 제조사를 고객으로 두는 게 더 이익이죠.
그런데도 왜 중국에선 CATL이 차를 직접 만들 거란 얘기가 꾸준히 나오는 걸까요. CATL이 여러 완성차 업체(스타트업 포함)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CATL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CTP 뒤를 잇는 다음 단계의 기술, 셀투샤시(CTC, Cell to Chassis) 때문입니다.
셀투샤시(CTC)도 개념은 어렵지 않습니다. 배터리 ‘모듈’은 물론 ‘팩’도 만들지 않고 배터리셀을 바로 차량 샤시와 통합시켜 버리는 겁니다. 주행거리를 더 늘리고 비용은 더 줄일 수 있죠.
셀투팩(CTP)을 조금 더 확장하면 셀투샤시(CTC)가 되는 것 아닌가 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른 기술인데요. 왜냐하면 샤시는 본래 배터리 기업이 아니라 차량 제조사가 만들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기업이 혼자 개발하기란 불가능하죠. 초기 연구개발 단계부터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 기업이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만들 수 있습니다. CATL이 자동차 회사에 계속 지분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CATL은 이르면 2024년 말쯤 CTC 기술을 적용한 첫번째 차량이 출시될 거라고 밝혔는데요. 과연 완성차 업체들이 생명줄처럼 쥐고 있는 샤시설계 기술을 CATL과 공유하려 할까요. 배터리와 샤시가 통합되면 배터리가 고장 나도 수리할 수 없을 거란 걱정이 많은데, 극복 가능할까요.
리튬 비싸다, 나트륨배터리!
셀투팩과 셀투샤시 둘다 결국 배터리를 더 싸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기술입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서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게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인데요. 같은 이유로 CATL이 밀고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나트륨이온전지입니다.
지금 전기차에 쓰는 건 다 리튬이온전지이죠. 그런데 리튬 가격이 요즘 좀 내려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쌉니다. CATL은 아예 리튬 대신 나트륨을 쓰는 2차전지를 개발했고(2021년) 올해 안에 양산에 들어갑니다.
아시다시피 나트륨은 바닷물 퍼내서 거의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죠.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소재인데요. 그래서 벌써부터 ‘나트륨이온배터리가 게임체인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실제 어떻게 나올지를 두고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풍부하고 저렴하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죠. CATL 측은 나트륨배터리와 리튬배터리를 동시에 탑재하는 방식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를 500㎞ 수준으로 만들 거라고 밝혔는데요. 한편에서는 나트륨배터리 특성상 전기차용보다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주로 쓰일 거란 관측도 있습니다.
바쁜데 발목 잡는 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CATL은 ‘더 싼 배터리’를 만드는 기술에선 확실히 앞서 있습니다.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37%)를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요(6년 연속 점유율 1위). 그럼 CATL 미래는 밝고 희망차냐고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도 고민거리가 산더미입니다.
우선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게 아닙니다. 경쟁업체가 치고 올라오면서 CATL의 중국 시장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요. 지난해 48%였던 CATL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1월 44%로 떨어졌습니다. 2위인 BYD(비야디)가 34%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격차가 10%포인트까지 좁혀졌죠. CALB 같은 중견업체들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요.
오죽하면 CATL이 지난달 ‘반값 리튬(톤당 20만 위안)’으로 배터리 판가를 낮추면서 중국 고객사와 3년 장기계약을 체결했을 정도인데요. 자체 리튬 광산을 보유한 CATL이 경쟁업체를 누르기 위해 가격전쟁을 시작한 겁니다.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치킨게임의 승리자가 돼서 중국 시장을 평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그걸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인데요. 지난 6일 쩡위친 CATL 회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시 주석이 묘한 발언을 했습니다. CATL의 급성장에 대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도 된다”고 한 겁니다.
그는 “초기에 기세 좋게, 시끌벅적하게 일어났다가 마지막에 흐지부지되는 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는데요. 시 주석 발언이 나온 지 며칠 뒤 CATL은 50억 달러 규모로 예정했던 스위스 증시 상장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기관이 상장 규모를 5분의 1로(10억 달러로) 줄이라는 지침을 줬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기업이 너무 커져서 자신들의 통제 밖에 놓이길 원치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죠.
물론 가장 큰 위험요인은 미국의 견제입니다. FT의 최근 기사를 인용하자면 ‘CATL이 직면한 장기적인 위험은 미중 갈등이 고조돼 과거 ‘화웨이’ 사례처럼 미국 관료들이 CATL을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CATL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FT에 따르면 쩡위친 CATL 회장은 지정학적 위험을 항상 걱정해왔다고 합니다.
이미 미국 의회에선 견제를 시작했습니다. 공화당인 마르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은 “포드의 프로젝트가 미국의 가장 큰 지정학적 적을 심장부로 데려올 것”이라며 CATL과 설립하는 배터리 공장에 IAR 보조금을 주지 않는 법안을 발의했죠.
떨어지는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에도 바쁜 와중에 중국 정부와 미국 정치권의 견제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CATL가 예전처럼 질주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배터리라는 미래 먹거리를 놓고 경쟁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예의주시해야 할 이슈입니다 By.딥다이브
한국 기업이 만드는 삼원계 배터리는 마치 스마트폰의 아이폰 같은 하이엔드급 고성능 제품입니다. 어찌 보면 아직 CATL과는 직접적인 경쟁관계라기보다 좀 다른 물에서 놀고 있는 건데요.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도 LFP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서 보듯이 그 시장이 커지는 추세인 건 분명합니다. CATL이 값 싼 배터리로 승부한다고 해서 무시할 건 아니라는 거죠. CATL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포드에 이어 테슬라도 CATL과 기술제휴를 통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중국을 견제하는 IRA법을 우회할 길이 생겼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건 LFP배터리의 매우 큰 장점입니다. CATL은 ‘셀투팩’이라는 기술을 통해 LFP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고 주행거리를 늘리고 있습니다.
•CATL은 ‘셀투샤시’와 ‘나트륨배터리’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업계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죠.
•하지만 CATL 앞에 놓인 난관도 적지 않습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경쟁업체를 따돌려야 하고, 미국과 중국 정부의 견제까지 극복해야 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이 시작되는 거죠.
*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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