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기업 협의체, 산업부에 건의
“올 입찰물량 확보해야 투자 확정”
‘청정수소 인증’ 도입도 서둘러야
당국 “기업 사정 달라 의견 청취 중”
“정부가 지난해 12월 간담회에서도 올해 안에 청정수소 입찰시장을 개설하겠다고 해서 투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내년으로 미뤄지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국내 에너지기업 관계자)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 발전에 대한 기업들의 민간 투자가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 발목이 잡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수소 관련 기업들이 2021년 출범시킨 수소기업 협의체 ‘코리아H₂비즈니스서밋’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수소 발전 입찰시장 고시에 반발해 청정수소 입찰시장 조기 개설과 입찰물량 확대 등의 개선 방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9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달 13일 ‘수소발전 입찰시장 연도별 구매량 산정 등에 관한 고시 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소 발전만 별도로 분리한 입찰시장을 만드는 게 골자다. 일반수소 발전시장은 올해, 청정수소 발전시장은 2024년 입찰시장을 열기로 했다. 수소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적이다.
문제는 민간의 투자시계를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정부는 내년 청정수소 발전시장을 열어 3500GWh(기가와트시)만큼 입찰을 하고, 이를 2027년 생산해 공급할 계획이다. 2025년 개설 물량 3000GWh는 2028년 공급하게 된다.
기업들은 2027년부터 청정수소를 공급하려면 입찰시장을 내년이 아닌 당초 계획대로 올해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입찰 물량을 확보해야 탄소포집저장기술(CCS)이나 재생에너지 연계 플랜트, 운송 선박 구축 등에 대한 투자를 확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입찰 물량도 민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중부발전과 SK E&S는 2025년을 목표로 충남 보령시에 블루수소 연 25만 t 규모의 청정수소 생산기지를 지을 예정이었다. 롯데그룹과 포스코는 2030년까지 블루·그린수소를 각각 연간 120만 t, 50만 t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입찰시장 규모가 발표되자 업계에서는 “발전소를 짓기도 전에 벌써부터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청정수소가 아닌 일반수소 발전시장은 2025년부터 매년 1300GWh씩 확대될 예정이다. 설비용량으로 따지면 연 200MW(메가와트)씩이다. 현재 연료전지 발전 사업을 위해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연료전지 대기 사업자만 설비용량 기준 약 6GW(기가와트) 수준으로 알려져 있어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청정수소 인증제’ 윤곽이 잡히지 않은 것도 투자를 미루게 하는 배경이다. 청정수소 인증제는 온실가스 배출 수준에 따라 등급별로 청정수소를 인증하고 차등 지원하는 제도. 블루수소, 그린수소, 핑크수소 등 다양한 생산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따라 투자 계획이 달라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보다 늦게 청정수소 산업에 뛰어든 영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으로 올해 이미 청정수소 생산설비에 대한 보조금 입찰을 실시했다”며 “우리 정부의 정책 속도라면 청정수소 산업에서의 글로벌 경쟁력을 빼앗길지 모른다”고 했다.
산업부는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청정수소 입찰시장 시작 시기를 오히려 늦춰 달라는 기업도 있다”며 “청정수소 인증제의 경우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다양한 기업들의 의견을 청취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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