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 위주 대체기사 늘어
“10년만에 비노조 기사 현장 투입”
공기 급한 일부 현장선 현금 건네
“부울경 고액 월례비 60명 수사의뢰”
#1. 경력 30년 차 타워크레인 기사 김모 씨(63)는 지난달 초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탈퇴했다. 평소 현장 근무를 안할 땐 타워크레인 노조 집회에 참가하거나 건설 현장 관련 민원을 구청 등에 제기해야 했다. 건설사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노조 활동에 신물이 나서 이달부터 타워크레인 대체 기사로 일하고 있다. 수도권 대형 건설사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오전 5∼7시(조근), 낮 12시∼오후 1시(점심), 오후 5∼7시(야근) 일한다. 노조 소속 기사가 월급 외 웃돈을 받으며 일했을 시간에 대체 기사로 투입된 것. 그는 “대체 기사 채용이 늘면 나 같은 비(非)노조 기사들이 더 많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 부산에서 대단지 아파트 골조 공사를 하는 이모 씨(60)는 현장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계약 만료일인 이달 말까지 골조 공사를 끝내려면 주 52시간 외에 야근, 조근을 할 대체 기사가 필요한데 좀처럼 투입되지 않고 있다. 그는 “공사가 급한데 원청 건설사나 타워크레인 임대업체들이 노조 눈치를 본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일제 조사를 시작한 지 이달 8일로 100일이 지나며 월례비 지급이 줄고, 비노조 타워크레인 기사들이 채용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노조가 강성인 일부 지역 현장에선 아직 비노조 기사 채용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암암리에 월례비가 계속 지급되고 있다.
● 월례비 줄고 비노조 기사 채용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대형 건설사 수도권 현장 위주로 타워크레인 대체 기사들이 투입되고 있다. GS건설은 3개 현장에 기사를 1명씩, 현대건설은 2개 현장에 추가 기사를 투입했다. 삼성물산도 추가 작업이나 기사 이탈에 대비해 타워크레인 5대에 조종사 7명을 고용했다.
타워크레인 150여 대를 보유한 임대업체 대표 김모 씨(60)는 지난달 약 10년 만에 비노조 대체 기사 5명을 수도권 현장에 투입했다. 이달 초에는 회사 소속 정규직 타워크레인 기사 6명도 5년여 만에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김 씨는 “노조가 민원을 제기하고 집회하는 횟수가 줄어들며 건설사도 대체 기사를 뽑아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월례비가 사라지고 기존 기사들이 주 52시간 이하로 일하게 되면서 추가 근무가 필요한 시간엔 비노조 대체 기사 채용이 활발해졌다. 서울·경기·인천 철근콘크리트연합회 임원 김모 씨(68)는 “‘작업자가 부족하다’, ‘강풍이 분다’며 태업에 들어갔던 기사들도 국토부 태업 가이드라인이 나온 뒤 대부분 정상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 노조 강성 현장은 눈치 보기 여전
모든 현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수도권의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 관계자는 “당장 공기가 급한 현장은 월례비를 암암리에 줄 수밖에 없다”며 “계좌로 못 주니 현금을 봉투에 담아 건네기도 한다”고 전했다.
월례비를 주지 않으려면 비노조 대체 기사가 필요한데 건설사나 타워크레인 임대업체가 소극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10대 대형 건설사에서 최근 채용한 비노조 대체 기사는 회사당 5∼10명 내외에 그친다.
부산·울산·경남 철근콘크리트연합회 관계자는 “노조가 강성이어서 그런지 대체 기사가 뽑혔다는 소식이 없다”며 “비노조 기사가 투입되면 (노조가) 해당 건설사의 다른 현장에서 민원을 넣는 등 압박이 여전하다”고 했다.
건설업계는 면허 정지 처분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은 7000만 원 이상의 고액 월례비를 받은 부·울·경 지역 타워크레인 조종사 60명을 수사 의뢰했다고 이날 밝혔다. 국토부도 태업 의심 타워크레인 기사 21명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노조의 일자리 독점으로 경력을 못 쌓고 ‘장롱면허’를 가졌던 대체 기사가 현장에 투입되려면 실무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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