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서울 잠실에서 제주 중문단지로 여행할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시나요. 아마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탄 뒤 제주공항에 내려서는 다시 버스나 렌터카 등을 이용해 중문까지 가실 겁니다. 그런데요. 만약 헬리콥터처럼 잠실에서 중문까지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교통수단이 있다면 어떨까요. 비행시간 이외의 공항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을텐데 말예요.
하늘을 나는 택시는 정녕 꿈일까요. 잠실에서 중문단지의 호텔까지 곧바로 90분 만에 날아가는 교통수단을 2028년까지 상용화하겠다는 국내 스타트업이 있어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플라나’(PLANA)입니다. AAM(Advanced Air Mobility·선진항공모빌리티)이란 말을 들어보셨을지요. 요즘 UAM(Urban Air Mobility·도심항공모빌리티)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데요. AAM은 단거리 수송에 집중하는 UAM, 지역 간 교통수단인 RAM(Reginal Air Mobility·지역항공모빌리티), UAV(Unmanned Aerial Vehicle·무인항공기와 드론)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즉,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이착륙해 기존 항공 서비스가 닿지 않는 지역을 연결하는 미래 교통수단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플라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이브리드형 AAM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헬리콥터 대비 90% 이상 탄소 배출을 절감할 수 있는 차세대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를 사용해 별도의 충전 인프라가 없이도 승객 6명 정도를 태우고 500km까지 비행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플라나는 미국 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지난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현지 법인도 설립했습니다.
플라나의 김재형 대표를 만나 그가 꿈꾸고 준비하는 미래를 들어봤습니다. 김 대표는 일본 나고야대(학사)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항공우주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딴 뒤 현대자동차 UAM 개발팀장을 맡다가 2021년 플라나를 세웠습니다. 2020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기체개발팀장 자격으로 당시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옆에 섰던 인물이 김 대표입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을 주도했던 현대차의 콘셉트 기체 ‘S-A1’를 CES에서 선보인 뒤 사표를 내고 창업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창업했나.
“공대생이라 막연하게 창업을 꿈꾸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이전 직장(현대차)에서 일하면서 창업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됐다. 현대차가 아무리 자본력을 갖고 있어도 미래사업을 초창기부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현대차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누가 믿어 줄까 의문이 들었지만 현대차 근무 경력이 있어 해 볼만하다 싶었다.”
―그래도 창업에 영향을 미친 일이 있지 않을까.
“2017년 퍼스널 에어 비히클(personal air vehicle) 관련 회사들을 찾다 보니 ‘조비 에이비에이션(Joby Aviation)’이라는 UAM 회사를 알게 됐다. 조비는 미국 스탠포드대 기계공학설계 석사 출신인 조벤 베버트가 두 번의 창업과 매각을 통해 번 돈으로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의 헛간에서 창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새로운 모빌리티 개발을 시작하면서 전기추진 수직이착륙기인 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Landing)이라는 용어도 조비에 처음 적용됐다. 미국의 조비 사옥을 방문해보니 산속 산장같이 층고가 높은 나무 건물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당시에는 창업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았지만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조비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 당장은 조비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미국 에어택시 스타트업 조비는 지난해 SK텔레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기체·서비스 플랫폼(MaaS) 등 전 분야에 걸친 상호 협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비는 2024년 에어택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 5월 미국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에어택시 상업화를 위한 첫 번째 승인을 받았습니다.
―플라나도 지난달 미국 법인을 설립했다.
“글로벌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FAA로부터 형식증명(Type Certification)을 받고 파트너사를 늘려야 한다. 세계 항공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의 인증이 필수다. 미국 법인을 세워 북미와 남미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플라나는 창업 때부터 화려한 인적 구성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회사 안민영 부대표이자 최고전략책임자(CSO)는 김 대표의 나고야대 학부 후배로, 도쿄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LG전자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와 경영컨설팅업체 아서디리틀의 전략 컨설턴트를 지냈습니다. 이진모 부대표이자 최고제품책임자(CPO)는 김 대표의 미국 유학 시절의 지인으로, KAIST 기계과를 졸업한 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20년 현대차에서 제네시스 GV80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RANC)’에 참여한 이력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류태규 전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첨단기술원장과 김현순 전 ADD 체계종합팀장이 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합류했습니다. 이 회사의 60명 임직원 중 70%는 연구원 출신 석·박사로, 항공기와 전기차 관련 역량을 갖췄다고 합니다.
―국방 전문가들을 영입한 이유는.
“류 부사장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30년 동안 순수 국내 기술로 처음 만든 군용항공기 KT-1, 한국형 전투기(KFX), 한국 최초 초음속 비행기 T-50을 연구 개발했다. 플라나에서 AAM의 형상 등 기체 개발 담당을 지휘하게 됐다. 김 부사장은 항공기체계종합을 맡는다. 항공기의 엔진, 구동, 항전 등의 각 시스템을 통합해 최적의 기체 성능을 구현하는 항공기 제조의 핵심 영역이다. 기체 개발에 있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UAM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수직 이착륙이 필수다. 도심에서 교통수단이 뜨고 내려야 하는데 시내 한복판에는 활주로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발되던 eVTOL은 순수 전기 배터리로 작동돼 100km까지 비행할 수 있는데 반해 플라나의 AAM은 하이브리드 eVTOL인 셈이다. 차세대 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를 사용해 별도의 충전 인프라가 없이도 500km까지 비행할 수 있게 된다.”
―헬리콥터도 수직으로 이착륙하지 않나.
“그렇다. 우리에게 친숙한 수직 이착륙기는 헬리콥터다. 하지만 너무 시끄러워 UAM에는 적합하지 않다. eVTOL은 헬리콥터보다 기계 구조가 단순하고 전기 모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소음이 적고 기체 제작비용과 유지보수비도 적게 든다.”
―요즘 국내 대기업들과 활발하게 업무협약을 맺고 있던데….
“최근 LG유플러스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교통 관리 플랫폼을 활용해 회랑(UAM 항공기가 목적지로 이동하는 통로) 내 충돌 회피 등 도심항공교통 관리 역량을 검증하기로 했다. 기체의 비행 데이터와 고(高) 고도 5G·LTE 커버리지 데이터 등 실증 운항 데이터도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제주항공과는 기존의 근거리 교통수단을 플라나의 하이브리드 기체로 대체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공동 연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투자 유치는.
“지난해 10월 118억 원 규모로 프리 시리즈 A 투자유치를 했고, 현재는 시리즈 A 투자유치 라운드 중이다. 국내 기업과 벤처캐피털(VC) 기반 투자뿐 아니라 미국, 싱가포르, 인도, 유럽 등에서 자본 유치를 위해 노력 중이다.”
―플라나가 꿈꾸는 미래는.
“모빌리티로서의 헬리콥터를 대체할 수 있는 기체를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도심에서 접근성이 높은 차세대 항공 모빌리티를 꿈꾼다.”
김 대표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려면 이착륙 및 비행 관제, 하늘길 공간 정보, 충전 가능한 버티포트(AAM 정류소) 운영, 통신 기술, 항공기 정비 등 다양한 인프라 및 기술 생태계가 구축돼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기술 표준 제도와 규제도 정립돼야 합니다. 앞으로 헤쳐나갈 일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플라나는 기꺼이 도전하며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미래를 그렇게 준비하고 만들어나가겠다고 합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