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가동 중단으로 2년 동안 4인 가구당 연간 약 1만 원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8일 가동을 중단한 고리 2호기가 멈춰 서는 2년 2개월 동안 약 3조 원의 전력 생산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는 고리 2호기가 생산할 전력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 생산하는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전력 당국에 따르면 2년간 3조 원의 전력 구입 비용 증가가 전기요금으로 전가된다고 가정하면 kWh(킬로와트시)당 2.75원의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 4인 가구의 도심 주택용 월평균 사용량(307kWh)을 적용하면 월 844원의 요금이 오르는 것이다. 연간으로는 1만128원이 오르는 셈이다. 다만 전기요금은 한국전력의 신청으로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하기 때문에 실제 연간 약 1만 원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생기는 것은 고리 2호기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계속운전 허가 신청 시점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계속운전 허가를 운영허가 만료 3, 4년 전 신청할 경우 중단 없이 계속운전이 가능하지만, 문 정부에서 모든 허가 만료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을 불허하면서 신청 시기를 놓쳤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4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계속운전 허가를 신청하고, 설비 개선 작업 등을 진행 중이다. 2025년 6월 재가동이 목표다.
“멈춘 고리2호기, 관리에만 1760억… 전기료 年1만원 인상 요인”
운영 중단된 고리 원전 2호기 르포
내부 온도-압력 낮추는 작업 한창 “계속 운전했다면 불필요한 작업” 세계 원전중 ‘만료후 폐로’ 8% 불과 인근 주민 상당수 “계속 운영되길”
‘원자로 출력 0.0%, 발전기 출력 0MW(메가와트).’
11일 오후 3시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주제어실. 중앙 계기판에 녹색의 ‘0’자 3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4일 전까지 ‘원자로 출력 100%, 발전기 출력 681MW’를 가리키던 계기판은 8일 오전 3시부터 숫자가 줄기 시작해 같은 날 오후 10시 ‘제로’에 다다랐다. 1983년부터 40년간 운영해온 고리 2호기의 가동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고리 2호기의 가동이 멈춘 지 4일째였지만 주제어실 직원들은 분주했다. ‘RO’(Reactor Operator·원자로 가동 담당)라고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직원은 수시로 계기판 숫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이날은 원자로 내부 온도와 압력을 떨어뜨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계속 운전 허가가 났다면 불필요한 작업이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2호기 가동 중단으로 대체 발전과 정비 작업 등에 약 3조176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2년 동안 4인 가구당 연간 약 1만 원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 중단 2년간 부식 방지 등에 1760억 원 투입
가동 중인 원자로는 내부 냉각재 온도가 306.1도까지 올라간다. 압력은 ㎡당 157kg에 달한다. 높은 압력을 가해 끓는점을 올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구조다. 냉각재 온도는 35도, 압력은 대기압 수준까지 떨어뜨려야 원자로 내 연료봉을 꺼낼 수 있다. 이날 계기판상 냉각재 온도는 위치별로 48∼72도, 압력은 ㎡당 3.5kg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리 2호기의 연료봉을 꺼내는 작업은 14일 오전에 진행할 예정이다. 꺼낸 연료봉 중 일부는 가동 중단 기간에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넣어뒀다가 2년여 뒤 재가동 때 다시 투입된다. 김귀남 고리원자력본부 안전부 차장은 “원자로 내부 온도와 압력을 안전하게 줄이기 위해 원자로가 가동 중일 때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발전기가 위치한 터빈실에서도 작업자 여럿이 돌아다니며 설비 곳곳을 확인하고 있었다. 2025년 6월 재가동이 목표인 고리 2호기는 최소 2년 이상 멈춰 서 있어야 한다. 이 기간에 냉각재 배관 등 일부 설비는 질소를 주입하는 등 부식 방지 처리를 해야 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부식 방지 처리 비용을 포함한 고리 2호기 정비 작업과 설비 개선 등에 약 1760억 원이 들어간다.
현행법상 고리 2호기는 굳이 가동을 멈출 필요가 없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라 가동 중단 3, 4년 전부터 계속 운전 절차에 돌입했다면 운영 허가 만료 전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계속 운전 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탈(脫)원전 기조에 따라 계속 운전 절차를 시작하지 않아 가동 중단이 불가피해졌다. 한수원은 지난해 4월 원안위에 안전성 평가서를 제출해 관련 절차에 들어갔다.
● 국내 원전 10기 계속 운전 시 107조 원 비용 절감
정부가 고리 2호기 재가동을 서두르는 건 가동 중단 시간이 길어질수록 발전비용이 늘어나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 2호기가 2년간 생산할 전력을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할 경우 3조 원 이상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기준 kWh(킬로와트시)당 발전단가가 원자력(52.5원)이 LNG(239.3원)의 약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고리 2호기를 포함해 2030년까지 운영 허가가 만료되는 원전 10기에 대해서도 계속 운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10기 모두 각각 10년씩 계속 운전을 할 경우 LNG 발전에 비해 총 107조6000억 원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운영 허가가 만료된 원전을 계속 사용하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전 전문가는 엄밀한 점검과 설비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계속 운전은 안전하다고 본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설계수명 40년은 초기 허가 기간이다. 자동차나 항공기 등을 정기 점검하듯 원전도 점검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세계에서 운영 허가가 만료된 원전 252기 중 233기(92%)는 1차례 이상 계속 운전을 실시했다. 만료 후 폐로 된 원전은 전체의 8%에 불과한 셈이다. 가동 원전 91.3%에 대해 계속 운전을 승인한 미국의 경우 ‘계속 운전(Continued Operation)’ 대신 ‘허가 갱신(License Renewal)’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수명이 다한 원전을 추가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사업자에 대한 허가를 새로 내주는 절차로 보는 것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최초 운영 허가 기간을 40년으로 규정하는 데 대해 “40년은 기술적 제한 때문이 아니라 사업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특정 사업자의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하는 기간”이라고 밝히고 있다.
상당수 지역주민도 고리 2호기의 계속 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안읍 주민인 이재수 씨(65)는 “이미 수십 년간 원전 옆에서 지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굳이 지금 멈출 이유가 없다”며 “다만 위험 부담을 안고 지내는 주민들에게 확실한 보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연 장안읍 발전위원장은 “한수원에서 내는 기금으로 지역 발전이 이뤄졌고 고리원전본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은 원전이 계속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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