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4일(현지시간)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과 관련해 “일단 데이터를 몇 번 더 봐서 물가 경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경로로 갈 것이냐를 확인한 후에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 워싱턴DC를 방문한 이 총재는 이날 오후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가 어떻게 가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상반기엔 우리 물가가 3%대로 분명히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고, 하반기에도 물가가 3% 초반이나 그 밑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면서 “거기엔 유가가 어떻게 될지, 미국의 통화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등 불확실성이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그래서 불확실성이 없어지고, 하반기에 저희가 예상하는 물가 경로로 가는지를 확인한 이후에 금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통위원들 대부분 (입장)도 ‘앞으로 이같은 불확실성이 있으니 지금은 금리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물가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우리가 판단을 한 다음에 움직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이번 연차총회 참석과 관련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금리인상을 빠르게 하던 기조에선 금리를 얼마만큼 빨리 올리느갸 하는 논의가 주요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오래 높은 금리를 갖고 가야 물가가 목표수준에 다다르느냐 거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어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데, 우리와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 많은 나라들은 일단 금리인상을 동결하고 앞으로 물가 추이가 어떻게 되는지 바라보는 쪽으로 움직였고, 주요국인 미국과 유럽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금융안정 상황이 정리되면 1~2차례 정도 더 금리를 올릴 소지가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또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계기로 “물가 안정과 함께 금융안정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많이 형성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SVB발 금융 불안이 잠잠해진 게 아니냐’는 질문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롯해 미국 은행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언급한 뒤 “SVB 사태가 완전히 종결됐다고 보진 않는데 상황이 많이 개선됐고, 이번에 굉장히 많은 정책적 과제를 남겨놨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SVB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형은행과 소규모 은행들은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됐지만, SVB 등 중형 은행들은 디지털뱅킹 등으로 인한 속도 관리 문제 등이 발생해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디지털뱅킹이 발전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SVB 같은 사태가 우리나라에 일어난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훨씬 더 안전하다”면서도 “만일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디지털뱅킹에 따라 (인출)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은행 하나가 만약 잘못돼서 (문을) 닫게 되면 예금을 4~5일만에 돌려줘도 사람들이 기다렸는데, 지금은 4~5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만약 그것을 빨리 못 돌려주고 기다리면 그 사이 다른 데까지 불안이 커질 수 있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 속도를 줄일 것이냐, 어떤 제도로 바꿔야 될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한국은행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들은 어느 정도 결제 지급 보존용 담보자산을 갖고 있는데, 만약 갑자기 결제하는 양들이 확 늘어나면 거기에 맞춰서 담보도 늘려야 될 것”이라며 “(담보 비율을) 높여야 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디지털 (뱅킹의) 빠른 속도나 이런 것을 볼 때 담보 수준이 적절한 지 이런 것들도 다 살펴봐야 된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 10여년간 공을 들여 금융기관을 어떻게 정리할지 등 여러 가지 감독 체제를 만들어놨는데, 디지털뱅킹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며 “은행에 있는 예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고, 소셜미디어 등 때문에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과 관련해선 “인터넷 뱅킹이나 디지털 뱅킹으로 여러가지 많은 도전이 있을 때 과연 CBDC를 도입하는 게 이런 것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부동산 경기와 관련해 “작년 말에는 (부동산 가격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부동산 경기에 대해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올해 초 들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속도가 많이 둔화돼 작년 말보다 걱정을 덜 하는 편”이라며 “연착륙의 가능성이 많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한 이른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과 관련해선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 개선과 중국의 경제 회복을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상저하고는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기보단 우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세큘러 스태그네이션(경제활동의 장기침체)’ 가능성과 관련해 “인구는 굉장히 중요한 변수이고, 일본의 경험을 봤을 때 우리의 고령화가 빠르다”면서 “반드시 저희가 장기침체로 간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비를 해 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장기침체로) 갈 것이냐에 대해선 답을 못하겠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가능성이 크냐고 그러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는 인구고령화 속도가 빠른 태국과 중국 등도 장기 침체 가능성이 큰 아시아 국가로 꼽았다.
이밖에 그는 “자유무역을 중시하던 체제에서 주요국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적 텐션(긴장)이 커지고 세계 경제가 단편화(fragmentation)되는 추세 위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 탄소 경제·제조업 중심 경제로부터 비탄소·기후변화 대해 어떻게 적응해야 되느냐, 유동성 축소 단계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 재정도 긴축적으로 움직이는 상황 등에 대해서도 (회의 등에서)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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