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의 사회공헌 내실화 방안으로 비교공시제를 유력하게 검토 중인 가운데, 은행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사회공헌을 활성화하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비교공시제로 타 은행보다 뒤처진 은행들이 악덕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어져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의 사회공헌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사회공헌이 영리 행위와 뒤섞여 오히려 순수한 사회공헌을 알기 어렵고, 특별한 방향성 없이 획일화돼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 간 사회공헌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비교공시 체계를 추진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산발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한데 모아 금액별·항목별 등으로 분류해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특히 금액 등 정량적 요소뿐 아니라, 정성적 부문도 평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은행권은 정책 취지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은행이 정부의 인허가 산업일뿐더러,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는 만큼 사회에 대한 환원도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은행들은 사회공헌 비교공시제에 대해서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줄 세우기에서 뒤처진 은행은 결국 국민의 손가락질 대상이 되고, 나아가 악덕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평판 하락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열심히 사회공헌을 하고 순이익에서 큰 비중을 할애했는데, 타 은행보다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다”며 “결국 국민의 이자만 받아 가는 은행이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이 쓰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사회공헌 공시만으로도 충분히 정량적이고 정성적인 부분을 비교할 수 있다”며 “오히려 비교공시 체계로 각 은행의 사회공헌 특수성이 사라질 수 있다. 과연 비교공시를 통해 얻는 게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은행 간 사회공헌의 경쟁이 과열돼 형식적인 사회공헌이 난립하고, 결국엔 사회공헌 비용 증가로 배임 이슈가 제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경쟁이 과열되면 진정성 없이 형식적인 사회공헌을 마련하는 데 급급할 것”이라며 “일부 주주들은 증가하는 사회공헌 비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은행들은 정책 방향에 맞춰 소액생계비대출 기부금 등 사회 환원을 적극 동참해왔다”며 “사회공헌을 독려하는 정부의 취지는 좋지만,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융당국은 비교공시 체계 마련을 사회공헌 내실화 방안 중 하나로 올려놓으면서도 최종적인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최근 백브리핑에서 “어떤 형태로 공시를 강화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개별로 공시할지, 비교공시로 가야 할지 더 논의해봐야 한다. 모든 걸 감안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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