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산업과 관련해 이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중국이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3월에도 게임서비스 허가권인 ‘판호(版號)’를 여러개 발급하면서 한국 게임의 중국진출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수출품이라는 건 잘 아실 텐데요. 2017년 사드(THAAD) 배치를 이유로 중국은 한국 게임에 판호 발급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 게임산업을 얘기할 땐 ‘과연 언제쯤 판호가 풀릴까’가 주요 화두였는데요. 이제 판호도 풀렸다니까 그럼 K-게임이 ‘판호 훈풍’을 타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을까요? 게임 산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과 중국 게임시장과 K-게임을 주제로 인터뷰했습니다.
―중국이 한동안 거의 외자판호 발급을 안 하다가 이번에 한국 게임이 여러 개 판호를 한꺼번에 발급했습니다. 중국이 왜 게임시장 정책을 바꾼 건가요?
“중국 게임시장이 2010년대 초반 이후 엄청난 고성장을 했습니다. 기존 PC게임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전환되면서 시장이 갑자기 커진 거죠. 그렇게 201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하자, 시장 성장이 너무 빠르다며 속도조절을 하면서 판호 발급을 조절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중국 게임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10% 정도로 맞춰졌어요.
그런데 워낙 판호가 안 나온 지 오래되다 보니 콘텐츠가 부족해졌죠. 그래서 지난해 중국 게임시장이 급격하게 둔화되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성장률이 -10%로 역성장을 했거든요. 여기에 당국자들도 깜짝 놀란 겁니다. 아무리 속도조절을 했어도 10%나 역성장이라니 너무 심한 거죠.
그래서 이제 다시 좀 돌리자면서 콘텐츠를 적극 적극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게 지난해 말 이후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제 한국 게임도 좀 들어오라고 한 거군요. 중국이 2021년엔 청소년의 평일 게임을 금지한다(주말에 1시간만 게임 가능)는 매우 충격적인 게임 규제책을 내놨었는데요. 이런 것도 풀렸나요?
“아니요. 그건 똑같이 가고 있습니다. 양방향으로 생각하면 되는데요. 청소년이 게임하는 걸 중국에선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청소년 규제는 지속적으로 가고요. 오히려 이걸 우회하려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우회를 막는 기술을 더 보완하라는 말을 꾸준히 합니다. 지금은 청소년 이외에 성인들이 하는 게임시장을 되살리자는 기조입니다.”
중국에선 한물 간 MMORPG
―중국 게임시장에선 어떤 게임이 인기 있나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MMORPG 장르는 중국에선 한물 갔다던데요.
“국내에선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있다)작품들이 인기 최상단을 차지하는데요. 중국도 2010년대 중반 MMORPG 시대가 있긴 했습니다. 한 3~4년 정도였는데요. 이후 빠르게 MMORPG 인기는 사그라들었고요.
지금은 LOL(리그 오브 레전드)을 모바일로 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게임이 중국에선 굉장히 인기가 많습니다. AOS 장르라고 하는데요. 이쪽 작품이 매출 최상단에 위치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모바일 총 게임(FPS 장르)이 있고, 그 다음이 수집형 RPG입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인기가 올라오는 건 ‘서브컬쳐 수집형 RPG’인데요. 애니메이션이나 미소녀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입니다. 2010년대 초반엔 서브컬쳐 장르의 매출 비중이 1%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10%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서브컬쳐라는 장르가 흥미롭더라고요. ‘말딸’이라고 부르는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도 그런 장르이던데, 미소녀를 수집하는 듯한 게임이죠? 애니메이션 느낌도 나고요. 이 서브컬쳐 장르의 특징은 뭔가요?
“서브컬쳐 장르는 일단 캐릭터가 매우 귀엽고요, 무엇보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IP(지식재산권)’ 파워를 이야기하면서 리니지 같은 게임의 IP파워가 크다고 언론에서 많이 얘기하는데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리니지 같은 게임을 하는데 스토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거의 없죠. 캐릭터를 빨리 키우고 강해져서 보스를 깨겠다는 생각만 하니까요.
그러나 우마무스메나 국내에서 출시했던 ‘에버소울’, 글로벌리 인기 있는 ‘원신’ 같은 작품을 보면 캐릭터마다 서사가 있습니다. 그 세계관의 스토리가 있고요. 그래서 그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많죠.”
―방금 얘기하신 ‘원신’은 중국 게임인데 상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요?
“평균적으로 원신이란 게임의 일매출이 80억원 이상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연간 3조원 정도 매출이 나오는 거죠. 게임사가 30% 정도 가져간다면 1조원 정도 영업이익을 가져다 주고요.” ―그런 게임사는 개발비도 엄청 많이 투입한다고 하더라고요.
“원신을 예로 말씀드리면 초기 개발비로 1억 달러가 들어갔고요. 이후 콘텐츠 보강비용만 해도 연간 2억 달러씩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출이 워낙 크니까 개발비를 다 회수할 수 있네요.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는 장사죠.”
―그런데 어떻게 매출을 그렇게 올리나요? 게이머들이 뭔가를 계속 사게 만드나요?
“캐릭터를 모으는 거죠. 이런 서브컬쳐 수집형 RPG를 보면 캐릭터들이 처음엔 20개 정도로 시작하는데, 꾸준히 한달에 하나 또는 분기에 하나씩 추가 됩니다. 그렇게 30개, 40개로 늘어나는데 그 캐릭터마다 매력이 다르고, 강점을 가진 영역-공격력, 방어력 등-이 다릅니다. 그래서 캐릭터를 잘 조합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더 좋은 캐릭터를 뽑으려고 돈을 쓰고요.
일반적으로 캐릭터를 한번 뽑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레벨업을 시켜줘야 합니다. 보통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런 캐릭터가 중복으로 필요한데, 그래서 그 캐릭터가 또 나올 때까지 계속 뽑는 겁니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매출이 발생합니다.”
가벼운 모바일 게임이 대세
―중국 게임 시장에 대한 보고서 쓰신 거를 보니까 한국과는 많이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두 가지가 눈에 띄었는데요. 하나는 게임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게임 캐릭터가 성장하게 하는 방치형 게임이 많다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위챗 같은 메신저를 통해서 친구들과 게임을 같이 한다는 것도 특이했고요.
“국내 게임업계는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MMORPG 작품이고, 이걸 하는 사람들은 ‘헤비’한 유저들이거든요. 정말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고 정말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헤비유저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매우 소수이죠. 그러나 게임사들은 지금까지 이 소수의 헤비 유저만 잘 타게팅했어도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던 거죠. 왜냐하면 그 시장이 계속 성장을 했으니까요.
중국은 좀 다른 게 이런 헤비유저가 메인 타깃이 아니에요. ‘중위 유저’라고 하는 월 수십만원~ 수백만원 정도 매출을 올려줄 수 있는 중간층이 메인인데요. 그런 유저들이 하는 작품은 대부분 MMORPG가 아니라 캐주얼 게임이나 방금 말씀드린 수집형 RPG 같은 류의 게임입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게임을 할 때 친구들과 같이 하는 걸 좋아합니다. 커뮤니티 요소인 위챗의 미니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이유이죠. 누군가와 같이 깨 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거라서 ‘나 혼자 강해져서 빠르게 보스를 잡고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겠다’는 희열은 약하거든요. 그래서 같이 하는 캐주얼 게임이 인기 있고요.
또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는데요. 국내의 헤비한 게임들은 폰으로 즐기기 어렵죠. 중국인들은 대부분 하루 1~2시간 정도, 이동할 때 간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주로 합니다. 좀더 캐주얼하고 라이트하게 즐길 게임을 찾게 되고, 그런 걸 도와주는 게 방치형 요소이죠. 하루에 한두 번만 접속을 해도 게임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 때문에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한국에선 정말 많은 시간과 돈까지 쏟아부어야만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구조인데, 그러면 게임하는 게 피곤하잖아요. 이와 달리 중국은 라이트한 유저가 대부분이니까 게임산업 저변은 더 넓겠군요.
“훨씬 더 넓습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온 건 없지만, 인구 대비 게임하는 유저 비중 자체가 국내보다 훨씬 높을 겁니다. 중국에 가면 직업병처럼 대중교통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하는지를 살피는데요. 중국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합니다. 체감상 한국의 2배, 3배 정도에요.”
K-게임은 대박 낼 수 있을까
―말씀하셨듯이 국내 게임사는 여전히 MMORPG 장르 위주인데요. 그럼 중국 게임시장을 공략하기엔 어려운 건가요? 판호를 열어줬다고는 하지만, 이제 국내 게임이 중국 시장에서 잘 안 먹히게 생겼으니까 중국도 마음 놓고 이제 들어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아무래도 MMORPG 작품들이 중국에서 잘 할 수 있는 확률은 낮은 것 같습니다. 기존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이 중국에 가서 시장에서 정말 관심이 높았는데요(2022년 4월 중국 출시). 막상 보니까 흥행을 못하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거든요. 다른 MMORPG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정말 큰 인기를 끌었던 ‘던전앤파이터’ IP나 ‘블레이드&소울’ IP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데요. MMORPG 장르 중 다른 IP의 일반적인 게임이 중국에 간다고 갑자기 잘할 수 있다? 이건 너무 장밋빛 전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중국에서 성장하는 장르를 메인으로 영위하는 국내 게임사가 잘 할 수 있을 거고요. 대표적인 곳이 넥슨게임즈입니다.”
―어떤 면에서 유망하게 보시는 건가요?
“국내에서 서브컬쳐 수집형RPG로 가장 잘하는 게임사가 2곳인데요. 첫번째가 넥슨게임즈의 MX 스튜디오, 두번째가 ‘니케’를 개발한 시프트업입니다. 시프트업은 아직 상장사는 아니고요.
넥슨게임즈의 ‘블루아카이브’라는 IP가 나온 지 2년이 좀 넘었습니다. 2년 전 일본에서 처음 출시됐는데요. 일반적으로 게임이 출시된 뒤엔 매출이 꺾이거든요. 그런데 정말 잘 되는 게임들은 점차 스토리와 IP 매력에 사람들이 빠져들어서 2차, 3차 창작물까지 나오고 이걸 공유하면서 하나의 문화가 됩니다. IP파워가 이렇게 생기는 거죠. 이게 일본에서 생기기 시작해서 블루아카이브는 첫 1년 성적보다 2년째 성적이 더 좋고 지금도 쭉쭉 올라오고 있거든요.
일본에서 IP파워를 입증한 상황에서 중국 지역으로 판호를 받아 확장되는 시기이고요. 저는 중국에서도 상당히 큰 가능성이 있을 걸로 판단합니다.”
―판호는 받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출시는 안 된 상황이군요.
“2018년 이후 외자판호를 받은 게임의 출시시기를 평균적으로 내보면 판호를 받고 9~10개월 정도 걸리거든요. 그래서 빠르면 올해 3분기, 늦으면 올해 말~내년 초 출시할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까 그 펄어비스 사례처럼 기대가 컸는데 중국시장에서 생각만큼 인기가 없으면 주가가 엄청나게 빠지겠네요.
“그렇죠. 그때도 중국에서 출시 뒤 생각보다 반응이 없자 단기간에 30%가 빠졌고요. 그 이후에도 계속 하락을 지속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 시장이 다시 열린 건 엄청난 기회이지만, 여기서 기대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기업 주가는 확 꺾일 수 있겠네요. 국내 게임 업계엔 중국시장과 관련한 큰 숙제가 생긴 셈이군요.
“일반적으로 게임 출시 전에 잡히는 시장의 컨센서스가 낮지 않기 때문에 기대치 이상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엔 외자판호를 한국 게임사가 받았다고 하면 그 기업뿐 아니라 게임 업종 자체가 전체적으로 주가가 올랐어요. 판호 받은 업체는 20~30%, 다른 게임사도 10%씩 올랐는데요.
이번에 지난해 12월, 올해 3월 판호를 받고 나서는 시장 반응이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어요. 못 받은 게임사는 거의 오른 게 없고, 판호를 받은 게임사도 10%대 초반 정도 오른 게 다였는데요. 기존에 중국에 갔던 게임들이 성과를 별로 내지 못하다 보니 기대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기대감과 게임업종의 밸류에이션이 올라올 수 있는 시나리오는 올해 출시될 넷마블이나 넥슨게임즈의 중국 진출작들이 흥행 성과를 보이는 거죠. 그렇다면 ‘한국 게임사가 생각보다 가능성 있네’라고 여겨서 주가 모멘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주 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
“저는 게임시장이 전체적으로 좋아지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로는 중국 시장의 재개방이 당연히 긍정적이고요. 두번째로는 생성형AI가 화두잖아요. 생성형AI가 도입된다면 (게임개발) 비용이 많이 절감될 수 있고요. 게임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2~3년을 봤을 때 게임 업종이 지금 좋아지고 있는 국면은 맞는데요. 그럼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중요한 부분은 지금처럼 중국에서 판호를 발급 받는 것 같은 이벤트가 생기면, 이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됩니다. 이 구간에선 모멘텀을 잘 따라가고요.
게임이 출시되기 직전에는 컨센서스가 ‘이 게임이 굉장히 잘할 것’이라고 높게 잡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리스크 테이킹을 어디까지 하느냐가 중요한데요. 게임이 무조건 성공한다고 베팅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투자) 비중을 축소해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를 추천하고요. 그 다음 게임이 출시된 이후에 게임이 정말 잘 돼서 다음 분기와 다음 연도 실적에 얼마나 기여를 할지 계산이 나오면 다시 한번 접근하는 걸 추천합니다.” By.딥다이브
게임 좀 하시나요? 저는 사실 겜알못이라 이번 인터뷰 내용이 다 새로웠는데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니, 한번 해보고 싶어집니다. 임희석 연구위원님의 게임산업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중국 정부가 지난해 역성장한 게임 시장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 판호 발급을 늘렸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엔 분명 기회입니다. ―그동안 중국 게임 시장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장르 면에서도 MMORPG 인기는 한물 갔고 최근에 빠르게 뜨고 있는 건 ‘서브컬쳐’ 장르입니다. 세계관과 캐릭터 서사에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입니다. ―‘헤비 유저’의 엄청난 현질(게임아이템 구입)에 의존하며 MMORPG 장르에 편중돼있던 국내 게임사들 입장에선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아졌습니다. 단순히 판호를 받은 것 말고, 중국에서 먹힐 만한 게임을 만드냐 아니냐가 게임사 주가를 좌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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