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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니?”
노숙인을 고용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박찬재 두핸즈(옛 두손컴퍼니) 대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사업을 해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해도 열에 아홉은 망하는데, 노숙인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을 하겠다니. 그것도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25살의 새파란 학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모두들 만류했다. 그렇지만 박 대표는 분명 이 일이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2012년 7월 그는 생활용품 제조사 두손컴퍼니를 설립했다.
평범한 사람과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노숙인과 일한다는 것은, 박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더럽게’ 힘든 일이었다. 기껏 일해서 번 돈을 경마장에서 날려버리거나 월급을 모두 술 마신데 써버리는 노숙인들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가끔은 소변을 바지에 누고도 ‘냄새가 안 난다’며 그대로 출근한 직원에게 옷 가게에서 속옷부터 양말까지 새것으로 마련해 줘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창업 3년차까지도 매출이 크게 나지 않아 더 이상 고용을 늘릴 수 없었다는 것. 박 대표는 수천 번도 더 ‘포기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창업 11년이 지난 현재, 두핸즈는 여전히 건재하다. 누적 32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투자를 유치하고 누적 고객사 1000곳 이상을 확보했다. 2015년 이커머스 풀필먼트로의 피보팅이 신의 한 수. ‘일자리를 넓혀 인간의 존엄성을 넓힌다’는 미션도 한결같다. 여전히 전체 직원의 30%는 노숙인을 포함한 취업 취약계층으로 고용 중이다. 두핸즈는 어떻게 생존을 넘어 ‘성장’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노숙인도 ‘일’하고 싶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박 대표는 2011년 7월을 떠올릴 때면 늘 의문투성이다. 늦은 밤, 자취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던 그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서울역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 뉴스를 봤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사는 것이 힘들어서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또 내몬다는 소식에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차 올랐다. 그는 그 길로 막걸리 두 병을 사서 무작정 서울역을 찾았다. 역사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노숙인들은 술을 가져 온 젊은 청년을 환영하며 무리에 쉽게 껴주었다. 박 대표는 “당시 수염도 안 깎고 체육복 차림이어서 다들 더 반겼던 것도 같다”며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이틀 동안 밤새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박 대표는 노숙인에 대한 편견을 지워갔다. 한때는 대기업에 다니며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았다는 무용담에 귀 기울이기도 했고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5000원을 벌었다며 신나 하는 노인의 자랑을 들어주기도 했다. 박 대표가 본 노숙인들은 특별히 게으르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의 거처가 없고 세상에 나설 용기가 없을 뿐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료 급식이나 잠자리 같은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계속해서 먹고 살게 해줄 일자리였다. 박 대표는 이날 노숙인을 고용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불가능하다며 말렸다. ‘멀쩡한’ 사람과 일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노숙인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박 대표는 자신이 두 눈으로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노숙인들의 ‘삶의 의지’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노숙인 고용’이라는 회사의 미션은 세웠지만 어떤 사업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노숙인들은 대개 나이가 많고 전문기술이 없다 보니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었다. 사실상 기존 시장에서 제품의 질이나 가격으로 경쟁하기도 어려운 만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BM)을 만들어야만 했다.
1년 간의 고민 끝에 박 대표는 ‘종이 옷걸이’를 떠올렸다. 옷걸이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이 지면을 광고판으로도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대기업 CSR(사회공헌) 팀을 중심으로 수요도 높겠다고 예측했다. 노숙인 쉼터와 연계해서 상근이나 파트타임제 형식으로 노숙인들에게 작업을 맡기면 고용도 충분해 보였다. 매출 원가의 30%를 작업비로 지급하고, 일을 꾸준히 잘 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12년 7월 두핸즈(옛 두손컴퍼니)는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
하지만 창업 초 가졌던 ‘좋은 일’을 한다는 낭만은 금방 사라졌다. 창업이란 화려함 이면의 어려움을 창업을 준비할 때는 보지 못했다. 실제 창업을 하자 제품 기획, 개발, 제작 등 모든 과정이 낯설고 어려웠다. 믿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직원이 없어 영업도 직접 다녀야 했다.
변수는 ‘당연히’ 반길 줄 알았던 기업 CSR 팀이 아예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26살의 대학생이었던 박 대표가 종이 옷걸이를 들이 밀자 담당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아침 일찍 회사 앞에 도시락을 사 들고 가서 종이 옷걸이와 함께 전하기도 하고,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종이 옷걸이를 비치해 뒀다가 퇴근 길에 수거해가기도 일쑤였다. 그럼에도 의뢰는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의 5평짜리 자취방에 팔리지 않는 종이 옷걸이들이 쌓여갔다.
박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무리 사회적 가치가 높아도 결국은 제품력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실험 끝에 7kg까지 견딜 수 있는 옷걸이를 개발했다. 일반 옷걸이가 약 3kg까지 견딜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내구성을 높인 것이다. 또한 의류 기업과 협업해 종이 지면에 연예인 얼굴을 입히는 기발한 디자인도 더했다. 구매 고객에 한해 옷걸이를 증정했는데 인기가 높아 중고 시장에서 거래될 정도였다.
제품의 품질과 심미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자 서서히 시장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신세계몰 등 기업에서 대량으로 주문한 것. 디즈니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해 제작한 ‘겨울왕국’ 캐릭터를 콘셉트로 한 제품은 한 달 동안 20만 개 가량의 제작 주문이 들어와 5개 노숙인 쉼터의 노숙인 60여 명이 작업할 정도였다.
P&G, LG생활건강, 유니클로 등 규모 있는 의류⠂생활용품 기업들이 광고를 맡길 정도로 지면 광고에 대한 수요도 높았다. 전국의 10만 개가 넘는 세탁소에 옷걸이를 무료로 배포하면서 광고 효과가 톡톡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없던 홍보 방식이어서 소비자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맨손으로 시작해 1년 만에 매출을 1억 5000만 원 올리면서 사업에 청신호가 켜진 것처럼 보였다. 잠시지만 그때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더 많은 고용을 위한 물류로의 전환
하지만 창업 3년만인 지난 2014년 기존 비즈니스 모델로는 더는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했다. 종이 옷걸이 제조만으로는 고용 규모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광고업의 특성상 경기 사이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떤 달은 일감이 몰려 밤샘 작업을 해야 했지만 또 어떤 달은 일감이 아예 없는 달도 있었다.
일감이 떨어지면 회사도 문제였지만 같이 일하던 노숙인들이 더 큰 문제였다. 성실히 출근을 하다가도 일이 끊기면 이들은 어김없이 예전에 술 먹고 도박하던 삶으로 돌아갔기 때문. 일감이 없다는 소리에 “박 사장, 내가 무슨 잘못했어?”라며 물어오는 이들의 말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박 대표는 옷걸이 사업이 노숙인들에게 ‘부업거리’는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폐업까지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방문한 이웃 회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 그 회사는 인력 부족으로 디자이너가 제품 배송까지 담당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본업 외 배송 업무까지 하다보니 역량이 불필요한 데 분산돼 정작 중요한 신제품 출시도 미뤄지고 있었다. 제조업을 하며 배송까지 직접 했던 박 대표는 그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인프라 때문에 성장이 가로 막힌 중소기업들을 겨냥해 물류 사업을 하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심지어 물류업은 노동집약적이어서 더 많은 노숙인을 고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입고되면 진열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상품을 찾아 검수하고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엔 모두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물류창고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4.6명으로 제조업 대비 약 3배 이상 높다. 당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던 만큼 피보팅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회적 기업도 ‘테크’가 되나요?
2015년 2월 두핸즈 물류대행 브랜드 ‘품고(Poomgo)’를 론칭했다. 품고는 제품 관리, 검수, 재고 관리, 포장, 배송, 고객응대(CS)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풀필먼트(Fulfillment.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 서비스다. 고객사가 제품을 생산해 고객에게 팔고 나면 이후 발생하는 모든 과정을 품고가 관리하는 구조다. 특히 품고는 배송 이후 발생하는 반품 및 교환, 고객 응대 이슈까지 대신해 준다. 고객사는 제품의 개발 생산과 마케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품고는 경쟁이 치열한 풀필먼트 시장에서 틈새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성장했다. 당시 중소기업을 위한 물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 이에 풀필먼트 서비스 론칭 초기부터 물류업체들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해 등한시 했던 직원 4인 미만의 온라인 쇼핑 업체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점유율을 높여갔다.
특히 고객사의 성장 단계에 따른 맞춤형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매출 10억 원대 중소기업과 100억 원대 기업에 각기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 것이 인기의 비결. 예컨대 사업 초기에는 단순 출고가 많은 만큼 물류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백화점 납품 등 B2B 서비스나 해외배송을 지원하면서 단가를 높이는 식으로 접근한 것. 이를 위해 고객사와 주기적으로 만나 고객사의 판매 전략과 관련한 정보를 철저히 관리했다.
이같은 전략 덕분에 두핸즈는 초반부터 빠르게 풀필먼트 시장에 안착했다. 사업 초기 18평짜리 물류 창고로 출발했지만 10개월만에 물류 창고를 150평으로 옮겨야 할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피보팅 첫 해에 약 2억 원이던 매출도 이듬해 7배 늘었다. 이후 2022년 기준으로 누적 고객사 수는 1000개를 돌파했고 풀필먼트 센터 역시 용인, 남양주, 일산, 파주, 음성 등 총 5곳까지 확대됐다. 면적으로만 약 3만 9600㎡(약 1만 2000평)으로 축구장(7140㎡) 5개 규모다. 매출 역시 2021년까지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같은 해 9월에는 약 216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도 성공한다.
박 대표는 특히 치열해지는 풀필먼트 산업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물류 솔루션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7월 시드 투자 유치 이후 꾸준히 개발자 채용에 적극 나선 것은 물론 2020년 7월에는 인공지능 WMS(창고관리시스템) 솔루션 ‘핸디봇’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쿠팡 등 200개 이상의 국내외 판매 플랫폼 주문을 자동 연동해 한 곳에서 판매처의 주문, 판매, 재고 현황 등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21년 10월에는 국내 풀필먼트 스타트업 최초로 당일 자정까지 접수된 주문 건을 익일 새벽에 출고하는 ‘24시 주문 마감 서비스’를 출시했다. 또 지난해 1월 물류창고용 로봇 개발 업체 플로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기술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기업을 꿈꾼다
두핸즈는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 2019년 5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특히 창업 초기부터 노숙인의 일자리에 집중하며 ‘착한 기업’으로 인지도를 높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핸즈가 창업 후 11년째 창업 초기 품은 미션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좋은 미션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재빠르게 피봇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핸즈는 기업의 외형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두핸즈는 매해 연 매출이 2배 가까이 커지는 빠른 성장을 거듭하면서 고용도 함께 늘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일할 의지가 있는 노숙인만으로는 필요 인력을 충원할 수 없어서 고령층 등 취업 취약계층으로 구인 대상을 확장하기도 했다. 또한 각 지역의 사회복지기관이나 노숙인 쉼터 등지에서 추천을 받는 것을 넘어 직접 인력 스카우트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지하철 택배원’으로 tvN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하신 조용문 커넥터*를 고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방송을 본 직원이 그를 추천했고, 면접 진행 후 당시 82세로 최고령으로 합류했다. 이처럼 매출이 늘면 고용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결과 지난 2017년에는 대통령발 선물 담당 물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 회사 내부에서는 취약계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동료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은 ‘커넥터’란 호칭을 사용한다.
특히 두핸즈는 누구나 일할 의지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업무 역량이나 신체적 특징에 따라 맞춤형 업무를 고안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무거운 것을 들기 어렵다면 주로 수작업을 하는 임가공 업무에, 섬세한 포장을 하는 데 무리가 있다면 완성된 마대 자루를 모으는 업무에 배정하는 식이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일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만 세상사 마음처럼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믿었더니 기껏 번 돈을 술값에 탕진하고 다시 거리로 발을 옮긴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2011년 서울역에서 사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숙인들의 자활 의지를 믿고 사업을 시작한 만큼 허탈감도 컸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결국 또 ‘사람’ 이었다. 노숙인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은 것. 현재 물류혁신팀 출고팀 조장으로 일하는 장철주 씨가 대표적 케이스다. 장씨는 IMF 때 사업이 부도나면서 거리로 내몰렸다. 가족을 등지고 죽음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숙인 쉼터를 통해 두핸즈에 입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박스를 접는 단순한 일이지만 할 일이 생겼다는 뿌듯함과 함께 ‘장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며 존중해주는 이들에 힘입어 사회로 돌아갈 용기가 났고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박 대표는 ‘일’을 시작한 사람들의 신기한 변화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일자리를 구하자 사람들이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고, 저축을 시작하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10년 넘게 연락하지 않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가 일이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다.
최근 두핸즈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발 금리인상 등의 여파로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두핸즈 역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초까지 200명이 넘는 직원 중 70명 가량을 취업 취약계층으로 고용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11월 구조조정을 통해 대략 인력의 절반 정도의 인력을 해고했다. ‘노숙인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회사를 창업했는데 경영 악화로 사람을 내보야 한다는 것이 창업자로서 괴로운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박 대표는 회사를 튼튼하게 만들어 더 많은 일자리를 ‘다시 한번’ 만들어내겠다며 최근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당일배송, 주말출고, 24시 마감 등 다방면으로 빠른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고 11월에는 품고 음성센터를 네이버풀필먼트연합(NFA) 전용 센터로 전환하며 네이버와 협력의 강도를 높였다. 또한 올 2월 일본 최대 규모의 응원 구매 플랫폼 ‘마쿠아케’와 MOU를 맺으며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노숙인도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이상 노숙인이 아니라 두핸즈의 구성원”이라며 “2035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벼랑 끝에 몰린 이에게도 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일터가 되어주겠다는 두핸즈가 만들어갈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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