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
“이용자 관점서 공적서비스 구축
국내 초거대AI 기업 존재가 자산
잘 활용땐 정부 업무효율 높아질 것”
“이용자가 A 기관에서 서류를 받아 B, C 기관 등에 따로 제출할 필요 없이 서로 주고받도록 칸막이를 허물자는 겁니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의 특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가령 주민센터에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때 지금은 각종 소득, 재산 관련 서류를 일일이 제출해야 하는데 디지털플랫폼정부가 구축되면 자료를 자동으로 공유해 처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자정부’나 ‘정부3.0’보다 더 철저히 이용자 관점에서 공적 서비스를 구축하는 게 디지털플랫폼정부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 AI 기업 등 민간과의 협력 강화
고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출범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8개월째 이끌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아들인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한 IT 전문가다.
고 위원장은 민간 IT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디지털플랫폼정부 구축 과정에서 민간 기업과의 협력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반 이용자와 기업, 정부가 한데 모여 데이터를 분석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DPG콜랩’이라는 상시 협업 시스템부터 구축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대규모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이용자 맞춤형 서비스로 고도화하기 위해선 AI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은 “LG, KT, SK텔레콤, 네이버, 카카오 등 초거대 AI를 가진 국내 기업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자산”이라며 “이를 잘 활용하면 정부의 업무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공무원이 정책 보고서를 작성할 때 AI 기술을 활용해 과거 사례나 현행 법령 등을 쉽게 확인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고 위원장은 “공무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정책을 만든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데 AI 기술로 효율적으로 보고서를 쓰고 ‘팩트체킹’을 하면 진짜 ‘현장’에 나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 SaaS 기업 1만 개 육성
고 위원장은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이 기존 기술 대기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관 협업 플랫폼인 DPG콜랩을 통해 중소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자연어 처리, 추론, 번역, 자동 기계학습 등 고도화한 AI 기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축한다는 전략도 마련했다. 위원회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행 계획에 AI 생태계의 핵심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 1만 개를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고 위원장은 ‘소프트웨어 산업이 취약한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냐’는 질문에 “클라우드 기반 SaaS 기업의 집중 육성이 시급하다”며 달성 의지를 드러냈다. SaaS는 PC 등의 기기에 설치해 이용하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와 달리 인터넷으로 연결된 서버를 통해 구독료 등을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의 100대 기업 중 14곳이 SaaS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국내 SaaS 시장에선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 위원장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SaaS 분야에서도 작은 기업까지 민관 협업 생태계를 통해 여러 실험에 나서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과거 정부 주도로 초고속 유선 인터넷망을 구축하며 민간 통신사가 성장했다”며 “이후엔 무선 통신망도 깔면서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사가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플랫폼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는 데이터 공유를 막는 ‘부처 간 칸막이’를 꼽았다. 고 위원장은 데이터를 공유했다가 유출, 침해 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기관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데이터를 공유한 쪽이 아니라 받아서 활용한 곳이 책임지면 된다”며 “데이터 개방과 공유에 따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논의를 감사원 등과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정보기술(IT) 업계 안팎에서 KT 차기대표이사 후보로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낭설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디지털플랫폼정부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업무에 주력하겠다”며 “KT에 (차기 대표) 지원서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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