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낙찰때 추가 목돈 어디서…” 우선매수권 효과 미지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1일 03시 00분


[전세사기 피해]
전세사기 대책 실효성 따져보니
소유권 지키지만 대출받는데 부담… 피해자들 “집값 떨어질수도” 기피
장기저리대출 제도마련 시일 걸려… 진행중인 경매 유예에도 한계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이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가진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4.18/뉴스1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이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가진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4.18/뉴스1
20일 정부와 국회가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을 전방위적으로 쏟아낸 건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알려진 서울 강서구나 인천 미추홀구 외에도 경기 구리시 등 곳곳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우선매수권 부여, 경매 유예, 대출 지원, 채무 조정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당정이 대책의 핵심으로 추진하는 우선매수권 부여는 피해자 부담이 적지 않아 실효성이 있을지 미지수다.

● 우선매수권, 세입자 자금 부담 커
2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전세사기 빌라(전용면적 50㎡)가 지난달 24일 법원 경매에서 1억2010만 원에 낙찰됐다. 우선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선순위 채권자로서 8980만 원을 배당받았다. 세입자는 후순위 채권자로 전세 보증금 7500만 원으로 소액임차인으로 인정받아 2700만 원을 최우선변제받았다. 보증금 4800만 원을 잃은 것.

만약 이 집을 세입자가 우선매수권으로 같은 금액(1억2010만 원)에 낙찰받았다면, 세입자는 자신이 받아야 할 2700만 원을 제외한 9310만 원을 대출 받거나 스스로 마련해서 법원에 내야 한다. 이 경우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 4800만 원에 9310만 원을 합한 1억4110만 원에 해당 집을 매수하는 셈이다. 집의 소유권은 가져갈 수 있지만, 경매 낙찰가보다 자기 부담액이 커지는 데다 향후 시세가 떨어질 경우 손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우선변제도 못 받는다면 우선매수권 행사 시 부담은 더 커진다.

당정이 경매 자금에 대한 장기 저리대출을 추진하는 것도 세입자가 당장 목돈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낙찰대금(경락자금)이 필요한 경우 특례보금자리론을 기존보다 낮은 금리로 지원하기로 했다.

● 재원 마련 방안-도입 시기 등 불확실해
하지만 이 같은 대출 재원 마련 방안을 협의하는 데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채무 조정도 검토 중이지만, 이 역시 공공재원이 필요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어떤 기금에서 대출 재원을 마련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며 “관계부처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사가 손실을 입고 공적 재원이 소진된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미 전세금을 떼인 세입자가 대출을 추가로 받아 원치 않는 집을 낙찰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2005년에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공공임대주택을 지은 민간 건설사 부도가 나자 옛 임대주택법(현 민간임대주택법)을 개정해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했지만 실적은 저조했다. 당시 준공 후 부도가 난 임대주택이 7만254채로, 이 중 3만7211채가 경매를 진행했지만 세입자 호응은 낮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낙찰가가 감정가의 80∼90% 선에서 형성돼 600채가량만 우선매수권을 활용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매에 부쳐진 주택 세입자의 약 1.6%만 우선매수권을 행사한 셈이다. 강은현 EH경매 대표는 “시세 상승이 어렵다고 판단한 세입자가 많다면 우선매수권 활용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우선매수권을 도입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그때까지 현재 진행 중인 경매를 유예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이날부터 금융권에 경매 유예에 관한 협조를 구하고 행정안전부도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이 경매나 공매에 넘어가면 지방세보다 전세금을 먼저 돌려주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채권자가 개인이나 채권추심업체일 경우까지 경매 유예 협조를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피해자들 “반쪽 대책”
정치권 일각에서는 피해 주택을 공공이 직접 매입하거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정부가 싼값에 (피해 주택을) 매입해 세입자들이 (기존 거주지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무슨 돈을 가지고 어느 금액에요?”라고 되물으며 “피해자들에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막대한 재원이 드는 데다 채권 할인 비율도 사례마다 달라 결국 피해자 기대보다 적은 돈을 보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발표된 정부 해결책에 대해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A 씨는 “당장 피해자들이 우선매수권을 받으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른 시일 내에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세금을 활용해 지원을 하려면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세사기 대책#실효성#경매 유예 한계#우선매수권#반쪽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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